지난주 일요일은 올해 두 번째 토익 시험 치르는 날이었다. 한 달 전 본 토익 시험에서 충격이 워낙 컸기에 다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 년에 단 한 번 치르는 나의 의식이나 올해는 세 번 이상 치르게 될 것 같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치러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첫 대학 졸업을 전후로 토익 시험을 볼 때는 나도 당연히 취업을 위해서였다.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굳이 매년 볼 필요가 없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펙이나 제출 용이 아닌 스스로를 채찍질하기 위해 시험을 보게 되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도 웬만하면 매년 보려고 노력했다.
토익 시험을 보게 되면 답안지가 미리 주어진다. 본 사람은 알겠지만 앞에는 데이터 면(Data Sheet)이다. 수험번호, 이름과 같은 신상정보와 서약(정직하게 보겠다는 일종의 맹세)을 하고 뒷면에는 주로 답이 있는 면으로 Answer Sheet이라고 부른다.
시험 자체는 차치하고라도 접수할 때마다 과거 토익과 지금의 시험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낀다. 우선 시험 비용이다. 25년 전쯤 시험 볼 때는 내 기억에 2만 원 대였던 것 같다. 요즘 토익 시험은 52,000원이니 두 배가 넘게 올랐다. 가격은 그럴진대, 시험 인정 기간이 2년인 것은 변함이 없어 아쉽긴 하다.
하여튼, 지난번 시험 때는 후기에도 올렸지만 가장 최악의 시험 양상을 띠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시간이 남지는 않아도 얼추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거의 다 풀고 제출할 수 있었다. 물론 워낙 문제 은행식 시험 자료가 많기도 하거니와 달마다, 시험마다 난이도 편차가 있긴 하다. 전자기기는 절대 안 되기에 아날로그시계와 고정 테이프까지 준비해서 차분하게 시험을 보려 했다.
너무 차분하고 꼼꼼히 보았던 탓일까. 15문제, 세 세트의 문제를 남기고 서둘러 답안지 마킹을 마무리해야 했다. 종료 15분 전부터 방송에서 알려주는데 솔직히 이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문제 풀이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10분, 5분, 3분, 1분, 이렇게 방송 알림이 나올 때마다 서서히 조여 오는 사냥개에 둘러싸인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이렇게 시간 분배를 잘못하고 나온 날은 기분이 최악이다. 공부가 부족했다고, 연습이 효율적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탓함과 동시에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걱정 어린 남편의 마중에도 나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서 한동안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토익의 특징으로는 시험 보는 횟수가 늘었다는 것이다.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신청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원한다면 한 달에 두 번 볼 수도 있다.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여러 번 봐서 좋을 수도 있지만 2주 간격이니 단기로 실력 올리기에 부족한 기간이라고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주 보는 만큼 비용 부담도 커지기 마련이니까.
두 번째 토익을 신청하고 생각만큼 집중하지 못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중간에 번역 프로젝트를 갑자기 하게 되기도 했고 가정사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살다 보면 그렇다. 시험 하나만 한정 지어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멀티가 정말 안 되는 타입이라 중간에 할 일이 몰리면 압박감을 잘 제어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이를 악물고 잠을 극단적으로 줄일 수도 없었다. 내 몸과 체력이 예전처럼 버티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노력도 부족했고 시간 관리도 못해서인지 결과는 참담했다. 듣기는 15점 올랐으나 못 푼 문제가 많았던 독해 점수는 무려 30점이나 떨어졌다. 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는데.
힘이 들 때면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 나이에 뭐 하는 짓인가, 나는 왜 누가 시키지도 않은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나 하면서 말이다. 두 번째 토익 시험을 본 이날도 나는 민망함을 느꼈다. 그나마 맨 앞자리라 지난달 시험보다는 좀 덜 신경을 쓰긴 했지만 대신 감독관 선생님과 너무 가까워서 긴장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옆이나 뒤를 돌아보면 학생 대부분이 내 아이 또래로 보인다. 풋풋한 대학생. 심지어 초등학생을 볼 때도 있다.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어린 나이에 벌써 경쟁에 치이는가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가끔 신분증 확인 시간이 되면 감독관이 이렇게 늦깎이 수험생이 있나 하는 표정으로 한참 나를 쳐다볼 때가 있다. 민망, 민망, 민망.
이러한 어색함은 그나마 감당할 수 있다. 늦은 나이에도 공부를 계속하는 게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부끄럽거나 속상하지는 않다. 다만 가족에게 미안하고 나 자신에게 답답할 뿐이다. 하는 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더욱.
다행히 지난번처럼 시간 안에 못 푼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고 잘 본 건 아니다.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덜 어려웠다는 느낌은 있지만 내게 쉬웠다면 다른 학생도 쉽게 풀었을 테니까. 그래도 아쉽다. 어떤 시험이든 늘 아쉽다.
좀 더 공부해서 볼 마음으로 미리 시험 접수를 해 두었다. 아직 결과를 모르지만 준비하고 있는 큰 시험을 위해서는 2주 안에 토익을 다시 봐야 한다. 중간에 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집중력이 흐려질지 모르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리라 다짐해 본다. 늘 그랬던 것처럼. '어차피 소용없어'라는 마음으로 안 하는 것보다 '그래도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저지르기로 했다. 결과가 또 안 좋을 수도 있지만 '시도는 해 보았잖아'라고 나 자신에게 변호할 수는 있겠지. '안전한 무실패'보다는 '무모한 실행'을 내 인생에 하나 더 남기고 싶기에.
두 번째 시험에서 하나 더 좋았던 것은 분위기이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교실에 들어선 건 아니지만 텅 빈 교실에서 틈틈이 목 스트레칭을 하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수험장도 집에서 비교적 가깝고 익숙했다. 사실 너무 익숙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첫째가 다니던 고등학교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날 함께 시험을 본 수험생 중에는 아들의 친구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 어느 책 제목처럼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애써 밝은 생각을 하며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단순히 운이 아닌 노력한 만큼의 출력이 있길 바라며. 더운 여름 8월의 어느 주말, 나는 그렇게 연필을 들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