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인간』
『공간인간』( 2025년, 을유문화사)는 건축가이자 홍익대 교수이기도 한 유현준 작가의 인문 교양서이다. <알쓸신잡>과 같은 여러 방송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셜록 현준>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하시는 일이 다양한 만큼 사회의 복잡한 관계를 건축이라는 스펙트럼을 통해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는 의식을 전달한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공간의 미래』,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등 새로운 시각과 깊은 통찰이 담긴 저서로 여러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논픽션에 4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지만 작가 특유의 말솜씨와 독특한 시각이 잘 어우러져 시기별, 주제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 매 장마다 유용한 정보는 물론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까지 흥미롭게 풀어가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학이나 세미나에서 고급 강의를 들은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도 한 편도 아닌 17편의 주제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와 함께.
이 책은 '모닥불'의 혁명부터 시작한 인간이 '안과 밖'이라는 공간 구분이 왜 의미 있는 역사의 시작인지, 과학과 사회 현상, 인간의 속성 등 여러 방면의 예시를 통해 효과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단순히 세계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탐방하고 장단점을 논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인류가 왜 그곳에서 그러한 조건하에 문명을 형성했으며 어떤 인과관계를 보여주는지 세심한 논리로 다가간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불교를 아우르는 종교와의 상관관계, 문자, 경전 이야기 등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지식을 읽어가다 보면 인류의 설계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때로는 두괄식으로, 때로는 미괄식으로 논지를 정리한 글을 읽으며 독자는 감탄을 자아내고 깨닫게 되며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통찰을 맛볼 수 있는 어록을 몇 가지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작은 소제목만으로도 시선을 끌고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질문으로 독자의 궁금증을 끊임없이 자아내기도 한다.
'건축은 관계를 디자인한다'(5쪽)
'인간이 DNA고 건축이 숙주다'(17쪽)
'고인돌: 전쟁 예방주사'(60쪽)
'아퀴덕트: 나일강 없이 제국을 만든 건축(221쪽)'-참고로 모든 문명은 강을 끼고 발전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은 달랐다. 궁금하지 않은가. 책 속에 답이 있다.
'어느 시대나 공간을 압축하는 자가 승리한다(317쪽)'
'이 시대의 모닥불, 스마트폰'(338쪽)
'공간을 확장하는 자가 살아남는다(374쪽)'
'미국과 중국, 이 두 국가는 가상공간에서 이미 전쟁을 시작했다'(377쪽)
'인공지능 관련 논문 숫자는 중국이 전 세계 1위다. (중략) 대한민국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걸음마 단계로, 무척 뒤처져 있다(382쪽)'-참고로 중국은 공대에, 우리나라는 의대에 몰리는 현상이 있다.
<공간인간> 중에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 세상을 읽고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재미와 상식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최재천 교수님의 동물학과 같은 과학적 지식과 근거가 종종 인용되어 저자의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읽다 보면 그동안 무조건 암기만 해온 나 자신을 반성하게도 된다. 가령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4대 문명이 있지만 왜 하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제일 먼저 일어났을까'. 저자의 설명을 들어도 좋지만 질문의 진실 여부와 관련 항목이 궁금해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 보니 완독 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독서하는 동안의 즐거움이 나도 모르게 학구열을 자극하여 관련 사진이나 정보를 찾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완주할 수 있었다. 산 정상까지 가는 게 힘들지 한번 가면 그 성취감은 말도 못 하게 희열감을 준다고 하지 않는가. 마라토너가 느끼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주는 책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에 100%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성실하지는 않지만 신앙인이다 보니 종교나 인성에 대해 너무 확고한 주장을 접할 때면 조금 불편하기도 하였다. 가령 게임, 비트코인, 종교에 빠지는 심리를 동일시한 부분은 감정을 빼고 '한 지식인의 시선으로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듯싶다. 사실 혼란스러움보다는 배울 점이 훨씬 많은 책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생각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독특한 시선으로 본 인류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역설이 보이기도 하고 그 속에 파악하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도 좋았다.
책을 읽고 저자의 영상 및 강연을 몇 개 더 찾아보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LH 사태'를 두고 펼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견이었다. 냉철하면서도 솔직하고 현명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악당은 대놓고 욕이라도 먹지요. 위선자는 드러나지 않고 더 악한 짓, 나쁜 짓을 하는데도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더 위험하고 저 또한 개인적으로 이런 부류의 사람을 싫어합니다. "/LH 사태를 예언한 건축가 유현준(중앙일보와의 인터뷰 중에서)
강연에서도 들었지만 작가님은 '성악설'을 좀 더 믿는다고 했다. 사회주의는 성선설을 너무 믿어서 실패한 것이며 자본주의도 문제가 많지만 이익 추구라는 성악설을 인정했기에 지금까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다 보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한 제러미 벤담이라는 공리주의가 떠올랐다.
어려운 논픽션이라도 기존의 편협한 생각을 깨 주고 새로운 시선을 접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을 좋아한다. 거기에 가독성과 재미까지 있는 책이라면 두려움이라는 벽 하나가 사라지지 않겠는가. 역사, 인류, 세상 읽기에 관심 있고 불편한 진실도 기꺼이 마주하고 싶은 독자라면 올여름, 이 책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피서를 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