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라 누나)"내가 명령하면 너는 복종하기나 해."
내 안의 악마가 빠져나왔다. 분노가 치밀어 허리케인처럼 터져 나왔다. 첫 번째 폭발은 단순했다.
(제제)"누나가 누군 줄 알기나 해? 이 창녀야!"
'When I tell you to do something, you obey me.'
The devil inside me worked its way free. My indignation exploded like a hurricane. The first blast was simple.
'Do you konw what you are? You're a whore!'
My Sweet Orange Tree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중에서 p 125~126
충격이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5살짜리 꼬마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이 부분만 보면 이게 과연 친 남매간의 대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심각해 보인다. 이 말을 들은 제제의 누나는 어떻게 했을까. 이미 그녀는 여러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었고 제제는 그런 누나의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다. 심지어 누나와 남자친구의 다툼을 인지하고도 모르는 척하며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다. 너무나 가난했기에 제제는 유일한 장난감인 구슬과 딱지를 팔아 얇은 종이를 샀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단 하나의 연풍선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단지 저녁 먹으라는 말을 듣고도 연풍선 만들기에 집중했다는 이유로 잔디라는 제제의 연풍선을 찢어버렸다. 제제는 자신의 모든 돈과 시간, 정성을 들여 만든 풍선이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하지만 그때도 제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에 차지 않았던 잔디라는 제제를 억지로 붙잡아 끌고 방 한가운데로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그 순간 제제는 '창녀'라는 말을 한 것이다.
제제는 그 후 잔디라에게 사정없이 맞아야 했다. 팔, 다리, 얼굴, 심지어 입은 반복적으로. 겨우 두 살 위인 토토카 형까지 합세해 제제에게 폭력을 가했다. 제제의 말은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그 이전에 왜 제제가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헤아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눈이 퉁퉁 붓고 이빨이 빠질 정도로 두들겨 맞은 제제가 피를 철철 흘리는 순간 놀라서 다가온 다른 누나, 글로리아가 오기 전까지는. 잔인하다. 그 말밖에는 이 사건을 묘사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무리 인간의 본성 가운데 하나라지만 누구보다 사랑받아야 할 가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목격조차 힘들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 잊을 수 있다면 잊고 싶다.
가난과 혼란이 한 사회를, 한 가정을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고발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대로 어린 제제에게 이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제제가 그런 말을 한 건 방치된 환경 탓도 있고 그런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은 어떤 어른의 잘못도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아무리 끔찍한 현실을 살아가더라도 무지와 무책임함이 순수한 아이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제제가 폭발한 건 가난 때문이 아니다. 무관심 때문이 아니다. 억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자신의 꿈이 짓밟혔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만들려는 풍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제만의 꿈이었다. 제제는 글로리아 누나가 위로하며 함께 연풍선을 새로 만들자고 했음에도 거절했다. 다시는 그처럼 아름다운 풍선을 만들 수 없다며. 자신만의 풍선은 이미 죽어버렸다며. 이때 제제가 말한 '슬프다'는 표현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아이가 말하는 슬픔의 무게는 분명 어른의 그것과는 다를 텐데.
한강 작가님은 여러 인터뷰에서 작가님 소설은 모두 절박한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역사 속 폭력을 다루며 인간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한 그녀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폭력을 거부하는 삶이 가능한가. 인간 됨을 거부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채식주의자>에서 인간의 폭력을 향해 질문을 던졌고 <소년이 온다>를 통해 '폭력을 거부하면서도 삶과 세계를 포기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과거가 현지를 도울 수 있는지, 죽은 자가 과연 산 자를 구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이는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결국 모든 질문은 사랑으로 귀결된다'라며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고통과 사랑을 연결하고 인간성을 지키길 바랐다.
사실 이 장면을 포함한 챕터의 제목에서 이 비극적인 사건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14장: 'TWO MEMORABLE BEATINGS'(기억에 남을 만한 두 번의 구타)
마음 졸이며 읽어야 했던 제제의 비극은 이제 하나의 고비를 겨우 넘겼을 뿐이다. 제제에게 닥친 매질을 한 번 더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잠시 숨을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