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여, 네가 나보다 낫구나

by 애니마리아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은 30여 층 정도 있는 건물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며 눈인사라도 하며 지내는 이웃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아이가 어렸을 때 우연히 알게 된 학부모이거나 같은 성당에 다니는 형제님, 혹은 자매님이거나. 아, 강아지 산책을 하시는 이웃과 우연히 대화하다가 인사를 나누게 된 분도 있다.



부끄러움을 타기도 하고 내성적인 성격도 영향이 있겠지만 특히 타인의 시선을 받는 것이 불편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나 또한 타인의 시선을 잘 마주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간혹 외향적이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면 호응하며 미소가 나오지만 큰소리로 인사했다가 괜히 이상한 사람 취급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아서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그때그때 다르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문은 열렸다. 누군가 이미 타고 있는 걸 감지했지만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빈 구석을 응시하며 닫힘 버튼을 누른 후 문 앞에 바싹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이의 목소리였다. 워낙 크고 밝은 톤의 목소리로 인사해서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엄마, 아빠로 보이는 부모님이 온화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다복해 보이는 가족을 향해 가벼운 목례를 하며 아이에게 인사를 보냈다.



"어, 그래. 안녕!"



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최소한 대화를 몇 번 해 본 사이가 아니라면 이웃이어도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가족의 인상이 너무 좋고 아이의 밝은 모습이 하도 예뻐서 옆에 서 있는 아이의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몇 층에 사시나요?"



순간 아차 싶었다. 아이가 인사를 참 잘한다는 칭찬이라도 하고 물어볼 걸 대뜸 사는 곳부터 물어보니 그분도 당황하셨을 터이다. 그래도 그분은 선한 미소를 지으며 ㅇ층에 사신다고 하셨다. 곧 내릴 때가 되어 더 이상 대화는 진전되지 못했지만 말주변이 없는 나는 그저 감탄의 탄성만 소심하게 내뱉고 웃으며 짧은 만남을 갈무리했다.



밖에서 기다리던 안드레아의 차를 타며 물었다. 혹시 우리 동에 인사 잘하는 아이에 대해 아냐고 말이다. 놀랍게도 남편은 한 여자아이가 자신에게도 인사를 했다며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인사를 받아 주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색하게 굴 수도 있는데 사심 없이 인사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그 아이의 부모님이 보였다. 무서운 세상이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고 들려주고 사랑을 주었을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 아이의 인사 덕분에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숨 막히는 더위가 그 어떤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다. 최근 읽고 있는 제제의 장난스러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제제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동네의 어떤 어른들과도 친하게 지낼 정도로 밝고 순수한 아이라는 것이다. 아이를 생각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이리저리 재며 눈치를 보는 어른보다. 상처받기 싫어서, 오해받기 싫어서, 굳이 피곤한 관계를 맺기 부담스러워서 시선을 피하는 나보다 훨씬 훌륭하구나.'라고.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어른은 또 이렇게 배운다. 그들이 괜히 미래의 희망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아이들은 과연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예수님이 왜 '아이와 같은 사람이 돼라'라고 하셨는지 알겠다.





1507532.jpg?type=w1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keyword
작가의 이전글폭력은 언제 천사를 악마로 만드는가(MS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