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덕은 여전히 필요하다 1(믿음)

by 애니마리아

믿음이란 무엇일까. 단지 신앙인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성일까. 무언가를 믿으면 잘 되리라는 믿음과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이 높아지리라는 믿음, 혹은 '너는 잘될 거야'라며 소중한 사람의 행운을 비는 것은 어떤가. 토테미즘처럼 나무나 특정 동물을 숭배하며 복을 기원하는 것과 과학적 근거를 대며 미래를 낙관하는 믿음은 일치하는 부분보다는 그렇지 않은 성격이 더 많을 것이다.


사전은 믿음을 이렇게 정의한다.

첫째,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


믿음은 믿음으로 끝이 나는가 싶은데, 예문을 보면 좀 더 이해가 간다.

'믿음을 저버리다'(표준 국어 대사전)

여기서의 믿음은 신뢰나 약속, 의리의 개념을 담은 믿음을 뜻한다.


두 번째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창조자 및 종교 대상에 대한 신자의 태도라고 한다.(표준 국어 대사전)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신자의 태도를 덧붙인다.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자비, 사랑, 의뢰심을 갖는 일(표준 국어 대사전)이라고.


언뜻 보면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해 무작정 무서워하는 것 같지만 공포와 신앙에서의 두려움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각자 다르겠지만 신앙 안에서 살고자 하는 나로서는 '올바르게 살지 못할까 봐' 우려하는 두려움이다. 자비를 베풀고 사랑(보편적 사랑) 하라는 교리는 비단 기독교만의 가르침은 아니다. 불교나 이슬람교도 자비를 강조한다. 자신은 물론 타인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돕는 마음은 곧 신에 대한 사랑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며.


하지만 종종 언급되듯 실천이 동반하지 않는 믿음은 속이 빈 외침에 불과하다. 인간은 복을 원하고 자신을 위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으니 반복해서 기도하고, 미사나 예배를 드리며 끊임없이 스스로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다이어트 후 요요현상처럼 타인이나 외부에 대한 시선과 실천 의지가 사라지고 다시 내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때문 아닐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생각하시기에 믿음은 행동을 향해 나아가는데, 그 사이에 기다림이 있는 것 같다'라고. 믿음은 단순히 소망과 근거 없는 믿음 후 기다리는 행동이 아니라 실천을 통한, 노력을 근거로 하기에 더욱 기다림의 미덕이 필요하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태함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노력하며 견디는 인내의 태도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이기심을 조금이라도 이타심으로 바꾸고 올바르게, 선하게 살아가기 위한 의지와 수련이다.


신에 대한 의뢰는 무엇인가. 단지 고용인에게 일을 맡기고 좋은 결과를 희망하는 것과는 다른 의지일 것이다. 나쁜 짓이나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도 세례를 받았다고, 믿기만 한다고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닐 터이다.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고 죄도 짓지만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시 나아지려는 행동의 반복을 실천하는 용기. 변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기다림 그리고 실천의 반복이 그저 복을 바라는 기복 신앙의 태도를 근거 있는 믿음으로 승화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이런 말들이 식상하고 고리타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화뇌동하며 넋 놓고 사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의식을 지니고 사는 삶이 가치를 낳지 않을까. 나는 상처받았으니, 안 좋은 환경에 노출되었으니 어쩔 수 없다며 자포자기하는 것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사는 것. 혹여라도 내가 물려받은 악의 심성을 내 과거에서 끝내 버리고 싶다. 노력하고 싶다. 그렇게 짧은 인생(우주의 나이에 비해)을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구원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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