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었습니다
아프면 쉬라 했지만 억지로 일어나 몇 장 읽어봅니다.
책을 읽는다고 아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 드문드문 행복합니다. 잠시나마 어린아이가 된 것 같습니다.
죽을 푸고, 만두를 놓고, 요거트를 담아 야무지게 먹었습니다.
힘을 내고 싶었습니다.
힘을 내야 하루빨리 나을 수 있고 조금 더 책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픔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허리가 쑤십니다.
정신이 몽롱합니다.
콧물이 줄줄 흐릅니다.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기침이 나와 기침을 합니다.
간질거리는 찝찝함에 식은땀이 납니다.
목이 답답하고 따갑습니다.
금방 나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도 책을 폅니다.
조금이라도 읽고 누워야겠습니다.
고명환 작가의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를 읽었습니다. 잠깐 읽었는데 페이지마다 간직하고 싶은 문구가 가득합니다. 그래도 하나 골라 봅니다.
갑자기 에밀 아자르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하밀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하밀 할아버지는 항상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손에 쥐고 있다. 나중에 시력을 잃은 후에도 항상 들고 있다. 그냥 손에 쥐고만 있어도 행복한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 역시 책만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211쪽/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고명환
심한 몸살감기 증세와는 다른 두통이 몰려옵니다. 깨달음과 탄복의 울림입니다. 저는 웬일인지 팔, 어깨 통증도 잦은 편이고 녹내장도 있어서 시력에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모두 독서와 글쓰기,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순수한 상태에서 누리고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소설이지만 하밀 할아버지는 시력을 잃어도 책을 쥐었다 하니 기가 막힙니다. 이 글을 인용한 고명환 작가님도 비슷한 감상을 남겼습니다. 아무 일, 어떤 기적, 성공이 일어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말. 그제야 고 작가님은 진정 니체가 말한 '어린아이'의 단계에 이르셨음을 알았습니다.
어린아이의 단계를 한 층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창의적이고 이타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단계'(215쪽)를 다시 읽어보니 이제 저도 조금을 알 것 같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일을 놀이처럼 여기는 작가님을 닮고 싶습니다. 저는 아직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많네요. 특히 몸이 아프면 거의 모든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고통을 받거든요. 그 고통도 이길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네요. 가지 말라고 하더라도 묵묵히, 꿋꿋이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세상은 돈도 안되고 전망도 없는 그 길을 왜 가냐는 시선을 보내지만 가고 싶네요.
때로는 바쁜 일정으로, 아파서, 늦잠을 자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정신없는 아침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시 한 편을 읽어보라고, 그것도 독서라고 고 작가님이 권하시네요. 그래서 잠시 읽던 책을 내려놓고 시와 에세이가 섞인 책을 펼칩니다. 마침 위로가 되는, 힘을 주는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움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라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39쪽/ 『너를 아끼며 살아라』 나태주
이 길이 맞나, 내가 원해서 선택했지만 과연 현명한 결정일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원했는지, 결정을 했을 때 행복했는지 떠올려 봅니다. 계속 가던 길을 갈지, 되돌아갈지, 돌아서 낯선 길을 통해 갈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혹여 다른 길로 갈 때 원래 가던 길이 그리울까요? 아쉬울까요. 속이 시원할까요. 대답은 질문을 통해서만 알 수 있겠죠. 힘들수록 나를 지탱해 주고 계속 질문하게 하는 문구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p.s. 출근하다 말고 아침으로 죽을 배달시켜 준 안드레아에게 감사합니다. 먹고 힘내도록 노력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