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 Sense and Sensibility 』(이성과 감성)를 읽었다. 두 자매의 다른 성격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각각 이성과 감성 부분을 대변하는 두 자매, 엘리노어와 매리앤의 언행을 통해 과거 고통이나 고난 앞에서 소심하고 겁먹은 나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좋은 작품을 읽으면 쉽사리 그 작품과 헤어지기 아쉬워 다시 보곤 한다. 부분적으로라도 나를 멈추게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들의 대화를 다시 엿듣기도 한다.
"내가 제대로 처신하지 못한 거 알아. 스스로 나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지. 나를 아프게 만들기도 했고. 언니와 엄마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 자학하는 나를 보며 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할지 신경도 안 썼다고. 제닝스 부인이나 미들턴네 가족에게도 막 대했지. 그분들은 내게 잘해주셨는데 말이야. 난 정말 나쁘게 행동했어. 반면 언니는 늘 감정을 억제했어. 불행한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매리엔이 말했다.
77쪽/Sense and Sensibility
언니 엘리노어는 매리엔의 고백을 듣고 자신을 알아준 동생의 말에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자기에게 닥친 시련의 아픔에 다르게 대응했다. 처음에는 언니가 더 성숙해서, 맏이로서 책임감이 있어서 힘들어도 참으려고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엘리노어도 감정이 있는 존재로서 실망과 아픔을 느끼는 건 똑같았다. 이성이 감정을 짓눌렀다고, 부정적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아무렇지 않은 냉혈한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매리엔의 경우도 온전히 감정이 치우친 철부지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사랑을 표현할 때도 절망할 때도 솔직히 드러내며 열정을 발산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말 그대로 자신의 감정에 정직한 것이고 순간에 충실한 태도이며 그러한 태도가 고유의 매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단 자기감정을 타인,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전가해 힘들게 한 부분은 지양해야겠지만. 외부의 충격에 스스로를 더욱 궁지에 몰아가며 학대하고 아프게 한 건 그야말로 자신을 놓아버린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다행히 그녀는 주변의 관심과 사랑, 특히 언니의 희생을 느꼈고 자신과는 달리 행동한 언니의 고결한 성품을 알아보았다. 만약 매리엔이 언니처럼 이성적인 판단만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고백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노어는 동생의 솔직한 심정과 반성, 혹은 자기에게 느꼈던 고마움, 인정도 전혀 알지 못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성과 감성이 둘 다 필요한 존재다. 고난이 닥치면 고통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고통에만 머물러서는 그곳에서 헤어날 수도 나아질 수도 없다. 시기는 다르지만 언젠가는 훌훌 털어버리고 더 나은 내가 될 힘이 필요하다. 이성은 그것을 도와준다.
때로는 감성이 우리를 숨 쉬게 한다. 외부에서 일할 때, 공부할 때 등 사회생활을 할 때는 이성으로 나를 무장해야 하기도 하지만 그날의 고통을 견딘 나에게 감성으로 위로해야 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서 기도할 테고, 안타까워하며 사랑을 주고 싶어 할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힘들어하되 주변을 모두 적대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게 반드시 내가 바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과거의 나를 돌아본다. 지금도 완전히 변한 건 아니지만 조금은 유연하게 대처하려고 노력한다. 고통을 볼 때, 고통을 느낄 때, 그것이 타인의 것이든 나의 숙명이든.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아무리 고난과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선택권이 있다면 안락함과 편안함에 먼저 손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여겼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며 살다 보면 고통받을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그래서 포기한 꿈과 도전이 얼마나 많았던가. 실패하기 싫어서, 남들 눈에 내 치부를 드러내기 싫어서 아예 접근조차 하지 않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안정적인 선택만 골라하면서, 괜찮은 척하면서. 그러다 전혀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고난이 닥쳐오면 와르르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니체는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널 죽이지 않는 것은 널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고난이 성장을 돕는다는 건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쉽지 않다. 돌부처도 찌르면 아플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 처할 때 앞으로는 그 아픔이 언젠가 치유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단 한 사람이라도 내게 힘을 주는 존재가 있다면 힘을 내는 것이 곧 나를 더욱 사랑하는 길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죽을 만큼 아프고 난 매리엔처럼, 자기를 돌아보고 주변에 감사하며 존경을 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식상한 표현일지라도 자꾸 되뇌며 내게 힘을 주고 싶다. 언젠가 또 다가올지 모르는 쓰나미 같은 고난을 대비해서.
고통이 있어 발전할 수 있고,
결핍이 있어 성장할 수수 있고,
고통이 있어 감사할 줄 알며,
고통이 있어 공감할 수 있고,
고통이 있어 강해질 수 있고,
고통이 있어 인내할 수 있다.
이성과 감성 (Sense and Sensibility) 저자제인 오스틴출판 THE TEXT발매 2007.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