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고척 경기장을 찾았다. 올해 벌써 세 번째 직관 경기다. 앞서 두 번은 지인이 구해 준 표로 갈 수 있었다. 때로는 부끄럽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주변에 마구 알려서 좋은 점도 있다. 어느 정도 나를 드러내서 그것을 눈여겨보았다가 도움을 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실 그 지인은 얼굴조차 모르는 분이다. 내가 불꽃 야구팬인 것을 귀여워하는 안드레아(남편)가 회사에 가서 이를 알렸다. 야구를 좋아하는 회사 동료가 소위 '광클의 기술'이 있어서 종종 어려운 표의 예매를 해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또한 나의 열정에 응답한 우주의 신호라고 여기고 싶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8월 31일은 불꽃 야구 8 번째 직관 경기이자 영건(대학생 및 아마추어 선수)들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시합이었다. 드래프트(신인 선수 선발회. 전국의 모든 아마추어 선수 중 당해 리그 입단 자격을 갖춘 선수를 선택하는 행사, 대학부는 2학년, 4학년 두 번의 기회가 있다)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몇몇 선수는 이날이 마지막 불꽃 야구 경기일 수도 있겠다 싶다. 프로에 가면 소위 '아름다운 방출'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말이다.
매주 월요일마다 녹화 경기를 유튜브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지만 직관은 또 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한다. 바로 현장성이다. 경기 시작 전 잠깐이나마 응원하는 팀, 선수의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경험인지 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야구를 온전히 이해하고 프로그램, 경기 규칙에 익숙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야구의 '야'자도 몰랐던 내가 그나마 야구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던 건 '불꽃 야구' 덕분이다. 나와 같은 초보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신선함과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2루수와 유격수가 뭔지, 병살타가 뭐고 왜 필요한지, 전광판에 나오는 스트라이크와 볼을 어떻게 구분하는지 전혀 몰랐다.
'불꽃 야구'는 순수한 예능 프로그램과는 다른 진정성이 있다. 감동이 있고 열정이 있고 팬들에 대한 의리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꼭 그들의 실력 때문은 아니다. 나이상으로는 지금 현역 선수들의 삼촌이나 부모에 가까운 나이지만 그들은 한때 대한민국의 수많은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던 선수들이었다. 은퇴한 선수들인 만큼 대부분 지도자의 길을 가거나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꽃 야구의 많은 기성 선수는 이 험난한 과정과 훈련, 극한의 날씨 속에 치러야 하는 고생을 감당한다.
승패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들이 '공포의 외인 구단'처럼 무조건 이기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야구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그들. 야구에 대한 사랑. 물론 출연료를 받긴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한 집안의 가장이어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를 견디기도 한다. 젊은 선수들 또한 고등학교 때에 선택받지 못해 대학이나 독립리그에서 활동하면서도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님이나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안고 살아간다. 분야는 다르나 나이와 전성기를 지난 사람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삶은 보통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에 슈퍼스타였든, 이름 없는 아마추어 선수이든 야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 믿고 끌어주며 하나 된 마음으로 훈련하고 경기하는 애환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이 프로그램 덕분이다. 단순히 '추억 팔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경기에서 늘 이길 수는 없지만, 모든 선수가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할 수는 없다. 카메라 앞이라 어느 정도 눈치도 보고 감정 조절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사실과 진실에 가까운 모습을 드러내며 고통은 함께, 때로는 홀로 감수하며 삶의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도 존경스럽다. 그들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나를 응원하는 것 같고, 그들이 행복한 미소를 보면 나도 행복을 느낀다.
직관 경기에서는 또한 매번 애국가를 부르는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에는 가수 '알리'가 나와 경기장 구석구석 울리는 목소리로, 매력적인 음색으로 시작을 알렸다. 군데군데 불꽃 파이터즈(팬들)의 응원 모습도 볼만했다. 전과 다르게 파란 불꽃 모양의 응원봉을 흔들거나 불꽃 모자를 쓴 팬들도 있었다. 매번 느끼지만 경기장에 가면 야구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돌 갓 지난 듯한 아기를 안고 온 엄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팬까지 다양한 계층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정근우 선수와 임상우 선수는 각각 1번 타자와 2번 타자면서 안타와 수비에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며 팬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양 팀 모두 서로를 잘 아는 듯 팽팽한 접전이었고 투수의 노련미가 두드러진 경기를 펼쳤다. 홈런도 나왔으며 아슬아슬하면서도 짜릿한 병살타도 여러 번 나왔다. 니퍼트 선수는 아픈지 인사 때조차 보지 못해 아쉬웠고 내가 특히 응원하는 최수현 선수도 이날은 힘겨워했다. 그래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정감이 갔고 그들이 노력을 알기에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SBS에서 방송을 했겠지만 불꽃 야구 정식 채널에서는 몇 주 후에 방송을 할 테니 승패 여부는 공개하지 않는 게 좋겠다. 단 이날의 경기는 그 어느 때보다 반전의 반전이 있었고 보기 드문 경기 양상을 띠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두 팀(불꽃 야구 대 연천 미라클)의 멋진 활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 팀이 각자 잘할 때는 잘하는 대로, 못할 때는 못하는 대로 박수를 치고 격려할 수 있었다. 서로 많은 것을 배우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그러한 현장에서 작은 인생을 영화가 아닌 실사로 본 기분이었다.
야구라는 한 편의 거대한 연극을 대본 없이 그대로 본 것이다. 나는 야구를 통해 관심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감동을 받았으며 남편과 함께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야구장을 가기 위해 미리 전통시장에 가서 치킨을 사고 버스를 타며 다른 팬들이 다양하게 입고 가는 유니폼을 보았다. 불꽃 야구를 가는 길은 그 자체로 흑백 사진에 색을 입히는 수채화였다. 하나의 소풍이었다.
이제 보니 이 사진을 찍는 순간 전광판에 신재영 선수가 나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