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기억, 그래도 감사

by 애니마리아


올해 세 번째 토익 시험, 이번에도 역시 아들이 다닌 고등학교가 시험장이다. 올해만큼 토익 시험을 자주 보던 해가 있나 싶다. 늘 공부는 하는데 생각만큼 점수가 나오지 않아 계속 도전하게 된다. 원서를 넣기 전에 최대한 노력하자고 다짐하고는 최선을 다하지 못해 우울한 기분이 드는 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른 아침부터 남편 안드레아는 바쁘고 둘째는 다소 투덜거리는 듯하다.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갈 때면 아빠가 전철역까지 데려다주었는데 그날은 나를 시험장에 데려다주어야 한다고 해서다. 우선순위가 밀린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가 무심코 지나가며 하는 말.



"엄마는, 무슨 토익 시험을 이리 자주 봐?"



그러고 보니 8월부터 2주 단위로 계속 보고 있다. 시험 결과는 내가 노력한 만큼 바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부족한 성과를 보면 생각이 달라졌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마감이 있는 번역 일을 해야 했고, 밀린 수업과 병원 일정이 있었고, 오래간만에 심한 코로나 증세로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고 싶지만 그런 악조건에서도 더 이를 악물고 성과를 내야 하지 않았나 스스로를 다그치게 된다. 결국 나의 나약함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닌가 싶다. '이것조차 제대로 못하다니'하는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유일하게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가 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아서 더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의 투덜거림은 결코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의 쓸모로 나를 가늠하고 판다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흘러가는 물을 아무리 손으로, 다리로, 온몸을 던져보았자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때로는 물속에 나를 맡기고 커다란 강물이 되어 바다로 흘러갈 물결을 온전히 느껴야 함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우리 집 여자들 등쌀에 안드레아는 나름 스케줄을 조절했다. 9시 20분 입실이고 주거지와 같은 도시에 있는 학교라 8시 30분 넘어서 출발해도 시간이 충분했지만 8시 전에 나가기로 했다. 나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에 와서 아이를 태우고 역에 데려다준 후, 안드레아 본인은 예약되어 있는 운동 시설에 가서 체력을 단련하기로 했다. 시간이 빠듯했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처리하는 안드레아가 이번에도 해결사로 나선 것이다. 그의 처세와 사랑, 돌봄 속에서 나는 더욱 부끄러워졌다. 감사할 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늘 감사하지만 그에 대한 감사는 매번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를 미워할 찰나, 감사할 일을 만들어 나를 우울함의 블랙홀에서 구원해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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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학교에 가니 역시 조용했다. 아들이 다닌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이곳에 올 때마다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다. 저 멀리 보이는 Artinus Hall이라는 건물 명도 반가웠다. 나중에 AI에 물어보니 라틴어처럼 보이나 진짜 라틴어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art라는 어두 때문에 예술과 미학, 세련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이가 학교에 다닐 때는 거의 오지 않던 학교인데, 아이가 졸업 후에 더 자주 와서 지나가는 곳이 되어버렸다.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들어가려니 문이 잠겨 있었다.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가 보다. 일찍 와서 수험장에 들어가지 못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기분이 이상했다. 옆에 나보다 일찍 온 한 여학생이 있어서 덜 외로웠지만 어색한 기분은 어쩔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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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이 열리고 수험장으로 향했다. 이번에 등록을 빨리했는지 고사실 옆이 바로 고사본부였다. 교실로 들어가기 직전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듯한 선생님들이 나오셔서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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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니 교실은 나름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교실에 가장 처음으로 들어설 때의 기분은 늘 좋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들어서면 왜 이리 사진을 찍고 싶은지 모르겠다. 혹여나 개인정보가 누출되는 곳은 없나 살핀 후 어린 학생들의 싱그러움이 남아 있는 교실 한편을 향해 앵글을 잡아본다. 자리는 지난번처럼 맨 앞도, 맨 뒤도 아닌 중간이었다.



'오늘도 잘 부탁해, 파트너가 된 책상아, 의자야.'



마음속으로 혼잣말을 하다 보니 무슨 뮤지컬을 흉내 내는 것 같다. 뉴스에서 '어쩌다 해피엔딩'의 주인공이 '안녕, 화분'하고 말하는 부분을 봐서 그런가?



결과는 어쩔 수 없다. 지난번보다 더 나아질 수도, 아니면 더 나빠지거나 비슷할 수도 있다. 주일 미사 때 들었던 신부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평온을 담아 본다. 흔하지만,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힘든 세상의 진리를 다시 들여다본다. 읽고 새기고 기억해야겠다. 구원의 열쇠에 앉은 녹을 벗겨내야겠다.



'세상 일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느 하나 나 아닌 타인의 도움 없이 누리는 혜택은 없으니.'



아무리 좋은 지혜의 말도 귀 기울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오늘, 내가 마주치는 사람만이라도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해 보자. 말이 있든, 말이 없든 몸짓의 언어는 그 자체로 생명력이 있으니. 그래도 감사하는 마음을 기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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