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찍 집에 가. 할 말이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야."
"무슨 일인데?"
"오늘 밤 8시에 임영웅 콘서트 예매 창이 열리거든."
"아, 그렇구나."
안드레아(남편)는 평상시 주로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바로 임영웅에 대한 소식이 있을 때. 가령 '6월은 임영웅 생일이야'라던가, 7월은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니 꼭 봐야 해'라며 재잘대는 모습이 마치 흥분한 10대 소녀팬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임영웅 콘서트 소식은 들려왔다. 임영웅의 미스터 트롯 시절부터 팬이던 안드레아는 가뭄에 비 소식을 들은 듯 쉽게 흥분을 가라앉히지를 못한다. 동영상 알고리즘이 유사한 관심사를 알려주듯 인간 AI가 되어 임영웅의 소식을 끊임없이 들려준다.
이번 전국 콘서트는 송도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워낙 팬들의 예매 속도가 빨라 열 번 가운데 아홉 번은 실패하는 티켓 전쟁이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컴퓨터에 도가 튼 안드레아도 이럴진대 나는 아무리 네이버 시간을 맞추고 집중해서 클릭을 해도 1초도 되지 않아 먹통이 되고 만다. 그래도 표를 확보하는 일에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었다. 다다익선이라고 되든, 안 되든 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기도 했고 임영웅 팬 활동은 안드레아가 가족 외에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유일한 취미 생활이기도 하니까.
예매 당일 저녁, 함께 일찍 저녁을 먹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서툰 나를 위해 예매 사이트 클릭 연습까지 미리 해야 했지만 그 과정도 나름 재미있었다. 방해가 될 수 있는 팝업창을 미리 제거하고 다른 공연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 시뮬레이션을 하며 연습하기도 했다.
8시 5분 전, 나는 안방 책상 위 내 컴퓨터 앞에서, 안드레아는 작은방 노트북을 켜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분 전, 30초 전, 10초 전, 그리고 땡!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8시 바로 직전 클릭했다. 단 1초인데, 화면이 얼어붙은 듯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먹통이 된 것처럼 전혀 변화가 없었다. 속으로 '그러면 그렇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표를 예매하는지 불가사의라는 생각은 이번에도 변함없었다.
드디어 화면이 바뀌며 나의 대기번호가 떴다. 3만 번째. 예상은 했지만 이번에도 남편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조금 미안했다. 작은방에서 안드레아가 전화했다.
"몇 번이야?"
"3만 번이 넘어. 나는 안 되겠음. 그만 화면 닫을게."
"아이고. 알았어. 나도 8천 번이라 아슬아슬해."
하지만 잠시 후 안드레아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표를 예매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위해 기쁘면서도 함께 송도에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교통체증이 걱정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임영웅의 노래를 듣는 남편의 옆에 있다 보니 나도 그의 노래를 들으면 흥얼거릴 때가 꽤 있다. 팬까지는 아니어도 즐겨 듣는 정도는 된다. 안드레아는 그렇게 10월에 예정된 송도 공연을 기다리고 있고 나는 내 남자의 남자를 보러 함께 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여유가 있으니 괜찮다고 여길 찰나, 8월의 마지막 주 어느 날 남편은 다시 흥분해서 내게 말했다.
"오늘 임영웅 신곡 들어야 해."
"내일이라며."
"오늘 맛보기로 주제곡 하나 발표한대. 나머지는 내일 저녁 6시에 공개하고."
남편이 그토록 임영웅의 신곡을 기다린 이유가 있다. 마지막 정규 앨범은 2022년 5월 <IM HERO>이었고 이후 삼 년 동안 OST와 개별 곡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앨범은 무려 11곡이 포함된 정규 앨범이자 <IM HERO2>에 해당하는 대형 프로젝트라고 했다.
하루 전 공개한 타이틀곡 '순간을 영원처럼'을 함께 들었다. 임영웅 특유의 다정한 발라드에 약간 세미 트로트 분위기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팬들의 고단한 인생을 어루만지는 듯한 가사, 위로와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임영웅의 골수 팬인 안드레아는 좋다고 난리였고 나는 '세미 팬 SEMI-FAN' 정도라서 어느 정도 동의를 해 주었다.
8월 29일 오후 6시, 예정대로 임영웅(Young Woong Lim)의 신곡이 발표되었다. 드라마 OST 등 꾸준히 노래는 나왔지만 여러 곡이 담긴 앨범으로는 거의 삼 년 만이라고 한다. 전날 발표한 메인타이틀곡 포함, 총 11곡이다. 아니나 다를까, 29일 저녁부터 주말 내내 나는 안드레아가 수시로 틀어 놓은 임영웅의 신곡을 무방비 상태로 듣고 있다. 사람도 자꾸 보면 정드는 것처럼 노래도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노래의 매력에 빠지는 듯하다. 지금까지 경험상 최소 한 달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을 것 같다. 안드레아는 심지어 스피커까지 샀다. 거실에서 음향실처럼 꽝꽝 울리도록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이동을 위해 차를 타면 자동으로 그의 노래가 나오고 이도 저도 안 되면 안드레아 스스로 가사를 흥얼거린다. 외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나의 모든 것을 인정해 주고받아주고 응원해 주는 안드레아이기에 나 또한 그의 남자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다양한 장르를 정성껏 넣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르신을 위한 트로트, 임영웅 자신의 본성에 가장 가까운 발라드, 내가 좀 더 좋아하는 팝 내지는 밝은 비트의 음악까지 골고루. 실제로 들어보니 '답장을 보낸 지'와 'ULSSIGU'(얼씨구)는 신선한 감각과 발랄함, 세련된 이미지의 노래라 좋았다.
여러 나이층, 다양한 팬을 위해 고심해 녹음한 그의 배려가 느껴진다. 내 남자가 선택하고 좋아하는 남자이니 좋은 가수라 여기며 나도 함께 그의 음악을 감상하려 한다. 음악은 자칫 권태로울 수 있는 부부를 이어주는 오작교이니고 하니까. 그렇게 우리 사이에 공통으로 즐길 만한 취미를 하나 더 쌓아 본다.
출처: 안드레아가 보낸 자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