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오아시스

(부제:아들, 네가 왔구나 3)

by 애니마리아


7월 어느 주말 불꽃 야구가 동아대학 야구부와 고척스카이돔에서 경기를 치렀다. SBS PLUS 생중계가 있었지만 '불꽃 야구' 유튜브 본 방송은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인하대 경기의 경우 직관 한 달 후쯤 방영이 된 것으로 보아 이번 경기 송출 시기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직관 경기 관람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날의 경기는 시작 전부터 특별한 경험으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아이가 차로 데려다주어서 특별했고


포수 박재욱의 홈런과 안타를 보아서 놀라웠고


한국 야구의 슈퍼스타 이대호의 홈런, 그것도 만루 홈런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남편도 일생에 거의 보지 못한 게 만루 홈런이라고 한다. 1-3루에 다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홈런을 쳤으니 단번에 4점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안드레아와 다녀오니 아이는 그동안 집에서 더위와 싸우며 닭볶음탕을 해 놓았다. 마침 그날은 복날(초복)이었고 우리는 아이 덕분에 몸보신을 했다.



몸은 아프고 해결되지 않은 일, 갑자기 발생한 크고 작은 사고, 걱정, 문제는 늘 산재해 있다.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해도 문제는 늘 생긴다. 나로 인해, 혹은 외부의 자극으로. 전에는 스트레스로 제대로 순간을 즐기지 못했다. 이면에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고, 그럴 상황이 아니라고, 사치를 부릴 때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 같다.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즐김은 방탕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힘들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삶의 자세를 지닌 조상들처럼 내게 주어진 문제에 너무 매몰되어 아이와의 시간, 남편과의 시간, 가족과의 추억을 망치고 싶지 않다. 늦었을 수도 있지만 내 눈앞의 사람에게 충실하고 싶다. 조금씩, 조금씩. 내 할 일을 다 못하더라도. 느린 거북이의 탈을 끝내 벗어던지지 못할지라도.



감사하는 마음, 내게 주어진 행운과 사랑에 대해 반복해서 되뇌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표를 구해준 남편의 동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안드레아,


우리 부부를 위해 운전사가 되어 주고, 요리를 해 주고, 본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식당에 함께 가서 밥을 먹어준 아이.



이는 감사하는 대상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며 최소한의 예의이고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감사야말로 삶의 불평과 허탈함과 무료함,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약이다.



저질체력으로 집에 와서 9시도 되기 전에 뻗어버린 나를 보고 조용히 불을 꺼 준 누군가(안드레아, 요한)에게 감사한다. 지금은 아이가 이미 독립해서 살고 있지만 그전에 단 며칠이라도 추억거리를 만들어주려 노력한 아이에게 고맙다. 아이에게도 배우는 순간이었다.



흔히 사랑한다는 말을 남용한다고 한다. 흔하게 쓰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유행어처럼 '영혼 없는 환대'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표현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안 하면 계속 안 하게 된다. 아니 못하게 된다.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어느 강연에서 이호선 교수님은 아이러니 같은 반전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때로는 부부 사이에도 연기가 필요하다'라고. 무작정 쇼윈도 부부가 되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면 행복하다고 하지 않는가. 때로는 상대에게 좋은 말,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를 건네며 자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진지함이 있든, 없든 우리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비단 부부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가족 사이, 친구 사이, 아이와의 관계, 이웃에게도 해당한다고 본다. 특히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냈다고 그들이 다 편한 건 아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먼저 한 마디 건네는 연습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자꾸 하다 보면 없던 진심이 생기기도 할 테니.



나도 생각하는 만큼 실천이 쉽지는 않다. 상대가 알아주지 않거나 나를 오해할까 봐, 혹은 너무 가식적으로 보일까 봐 망설이게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시도에 대한 욕구를 실천하고픈 생각은 늘 한다. 행동 없는 생각은 무의미하다는 말도 있지만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벽을 쌓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스스로 위로해 본다. 이런 생각이 가끔씩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표현하고 먼저 다가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색한 표현은 그렇게 자연스러운 생활이 되고, 습관이 되어 정성이 세상을 바꾸는 거름이 된다. 삶의 오아시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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