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르페디엠을 어떻게

by 애니마리아

광고인이자 작가인 박웅현과 책에 대한 영상을 올리고 있는 이혜성 방송인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기존의 개념에 새로운 통찰을 접하며 기록하며 기억해 보려 한다.


라틴어 '카르페디엠 carpe diem'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의 대화로 많이 알려졌다. 이 문구를 두고 '현재를 즐겨라'라고 해석하며 쾌락주의에 집중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라며 일분일초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금언으로 인용하기도 한다. 쾌락과 성실 사이에서 어느 쪽에 기울어질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어느 쪽이든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라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말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도대체 뭐가 가장 중요한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물리적으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쓰기가 중요한가. 내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는 문제와 걱정거리가 중요한가. 아니면 어제 내가 저지른 실수나 잘못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라는 감정을 다스리는 게 더 우선인가.


레프 톨스토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다 답했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내가 만나고 있는 당신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당신과 하고 있는 인터뷰입니다."


과거에 어떤 과오와 실수가 있었든, 미래에 어떤 계획을 해야 하든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행동과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며 큰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을 이미 알고 있지만, 나를 포함하여 현재의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지난 일에 대해 속상해하고 힘들어한다. 앞으로의 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예상되는 불행에 신경이 곤두선다. 막연히 '잘될 거야. 할 수 있어'라는 무지갯빛 말로 힘을 내려해도 잘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에 집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 잘 되든 되지 않든. 이미 지나간 일은 좋든 나쁘든 이미 벌어진 일이니 불과 일 분, 일 초전의 일조차 바꿀 수 없다. 피츠제럴드의 말처럼 인간은 '과거로 끊임없이 밀려가면서도 흐름에 맞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니까. 완전히 내 머릿속에서 내보낼 수는 없을지라도 밀려오는 파도를 맞이하고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노를 저어야 한다. '80일 안에 세계 일주'(쥘 베른)를 하려 했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밀려나갔다 하더라도 내가 쥐고 있는 노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박웅현 님의 말처럼, 우리는 완벽히 불완전한 존재다. 늘 행복할 수는 없다. 살다 보면 힘든 게 올 수밖에 없다. 나의 노력이, 나의 계획이 잘못되었다고 자책만 해서는 결코 현재를 살 수 없으니 오지 않은 결과에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다짐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의 눈과 귀와 손이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고 스스로 말해야 한다.


그도, 이혜성 님도 '늘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건강하세요'라는 말을 되도록 안 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항상 행복하고 건강한 게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는 확률을 높이려고 노력할 수는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인사한다고 한다.

"행복한 하루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행복을 비는 일은 분명 고귀한 말이자 행위이나 자칫 영혼 없는 축복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누군가와 헤어질 때나 만남을 기념하고 싶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한다. 행복한 순간은 적고 상대적으로 불행한 순간, 힘들고 지루한 순간은 많다. 후자의 경우가 많다면 그런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는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최소한의 결정이자 노력이다. 나 또한 이제부터라도 행복한 날을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나에게 닥친 시련과 고통에 속절없이 끌려다니고 싶지는 않기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픽셀라이프, 이건 또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