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곧 예술..『CITY OF NIGHT BIRDS』

by 애니마리아


책에 표시한 날짜를 보니 거의 4개월이 걸렸다. 처음에는 작가와 작품이 궁금하면서도 막상 400여 쪽에 이르는 영미 장편소설을 읽을 염두가 나지 않았다. 발레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유명한 예술가의 이름을 지나가며 들어본 것 외에 미술이나 음악, 춤에서도 전혀 일가견이 없다. 그래도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김주혜라는 작가의 작품이니 '뭔가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녀의 작품은 『 Beasts of A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2023)로 처음 접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계 작가가 쓴 영미 문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이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원서를 읽곤 한다. 작가 김주혜는 1987년 인천 출생이다. 아홉 살 때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가 살다가 프린스턴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온라인 잡지《피스풀 덤플링》의 설립자이자 편집자이기도 하다. 2016년 단편소설 <보디랭귀지 Body Language>로 작품 활동을 시작, 여러 신문과 잡지에 소설 및 수필을 기고하기도 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2021)은 출간 즉시 아마존 '이달의 책'에 올랐고 같은 해 《리얼 심플》 등에서 '2021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 10월에는 러시아 최고 권위의 문학 상인 야스나야 폴랴나상(톨스토이 문학상)을 받았다.



『 City of Night Birds 』(번역서:밤새들의 도시)는 당해 11월에 출간한 또 다른 장편소설이다. 첫 장편이 작가의 '뿌리' 즉, 모국을 다루었다면 이 작품은 '예술'을 모티브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간 즉시 미국의 배우 리즈 위더스푼 북클럽 도서로 선정되었고 《보그》 등에서 '올해의 책'에 올랐다.



소설은 나타샤(Natasha)라는 발레리나의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로서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사건이 교차되며 범상치 않은 예술인이자 한 여인의 삶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나타샤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면서도 치명적인 부상으로 2년간 춤을 추지 못하고 있다. 왠지 거만하고 까칠한 모습은 물론 자학하는 듯한 묘사가 거침없이 나와 독자로서 덩달아 긴장하게 되었다. 또한 발레리노 출신 감독, 드미트리(Dmitri)와의 해후 장면을 통해서는 나타샤가 그와 석연찮은 애증과 악연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품이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은 일정하지 않다. 무조건 시간 순서대로 나오는 건 아니다. 아주 어린 시절이 나오다가도 화제에 따라 돌연 그녀의 부모의 첫 만남의 장면으로 독자를 이끌어가기도 한다. 현재에 겪는 갈등, 미움, 사랑, 아픔이 과거의 단편과 만나며 처음에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던 문제의 퍼즐이 서서히 맞춰지기 시작한다.



발레인의 삶이 중요한 핵심으로 작용하지만 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러시아가 주된 무대이나, 우크라이나 및 프랑스 등 다른 유럽의 나라, 미국의 무대까지 장소와 시간을 오가며 거대한 드라마처럼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존했던 발레의 대가들, 러시아 발레단과 프랑스의 공연 문화, 혹독한 훈련 및 이 분야의 민낯에 대한 내용을 읽으면 작가의 방대한 조사와 분석, 연구 없이는 표현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삼일 내내 춤을 추지 않았다. 공연 일정이 있는 주에 이런 행동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빠지면 당신은 뭔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린다. 두 번 빠지면 당신의 선생님이 알아차릴 것이다. 세 번 빠지면 마침내 관객들이 알아차린다.

I haven't danced in three days, which is reckless in performance week. Skip one class a week, and you notice the difference; skip two classes, your teacher notices; skip three classes, the audience knows.

p.328/『 City of Night Birds 』




이는 비단 발레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음악과 같은 타 장르의 예술에서 자신의 기량과 실력을 매일 닦는 예술인에게 해당하는 말일 테니. 유명한 발레 작품 <지젤 Giselle> 공연을 앞두고 나타샤가 독백처럼 내뱉는 이 문구는 필자에게 예술의 본질과 운명, 감내해야 할 고통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러시아 작가가 쓴 러시아 문학이 으레 그렇듯 한국인이 쓴 러시아 배경 소설에도 수많은 캐릭터가 나온다. 그중에서 나타샤, 샤샤, 드미트리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로맨스와 갈등이 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전통적인 드라마에서 나오는 삼각관계와는 다른 다소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와 더불어 절친 니나와의 관계와 삶, 나타샤 엄마와의 가깝고도 먼 관계, 동일 분야에서 만나는 친구와 동료 사이의 묘한 경쟁 같은 복잡한 서사를 따라갈 때의 묘한 매력도 있다.



발레에 대한 전문 용어가 꽤 나와서 초반에는 다소 힘들 수 있으나 몇 가지 반복되는 용어와 상황을 파악하고 나면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에 빠지기도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한 여정, 사랑, 예술 등 드라마의 요소가 꽉 찬 소설을 즐기는 독자라면 이 작품도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이 러시아를 배경으로 철저한 조사와 예술적 감각으로 녹여낸 작품이 궁금하다면 『 City of Night Birds 』(밤새들의 도시)를 추천한다.




900%EF%BC%BF20251124%EF%BC%BF072610.jpg?type=w1






매거진의 이전글야생과 인간의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