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할 때가 되어 들른 미용실에서 그녀를 마주쳤다. 지난번처럼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내 맞은편, 그것도 손님이 앉아야 할 의자에 편안히 앉아 존재감을 드러냈다. 순간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시크하게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별 반응이 없다. 왠지 서운하다. 나는 그녀의 이름도 아는데.
지난번 디자이너 선생님께 여쭈어보았다. 고양이의 이름이 뭐냐고. 사실 그곳에는 고양이가 세 마리 있는데 심바, 심심, 심청이라고 했다. 내 비닐봉지에 고개를 파묻고 먹이를 찾는 듯한 고양이는 셋째, 심청이었다.
"하아, 그러고 보니 모두 '심'자 돌림이네요."
"네, 하지만 성격이 좀 까탈스러워요. 위에 오빠한테 대들기도 하고요."
"우리가 아는 '효녀 심청'과는 이름만 같군요:)"
심청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두고 소소한 대화를 나눈 후 잠시 생각해 본다. 심청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야기처럼 착한 심성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해도 아버지의 눈을 위해 목숨까지 바쳤을까 싶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두고 어느 이웃 블로거님이 색다른 시선으로 글을 쓰신 내용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위해 일을 하되 자신의 꿈도 이루고 싶어 했을 것 같다. 목숨을 담보로 음식을 구하기보다, 사회복지사 공부라도 해서 일도 하고 아버지도 돕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무료하게 있을 아버지를 위해 유기묘를 구해 '심아'라고 이름 짓고 자신 대신 아버지에게 돌봄과 정이라는 감성을 선사할 수도 있다.
그렇게 머릿속에서 소설을 쓰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렀고 샴푸 할 시간이 되었다. 자리에 돌아와서 머리를 말리려는데 여전히 고양이 '심청'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쳐서 나는 이때다 싶어 눈인사를 하고 작은 목소리로 '안녕, 심청아. 잘 있었니?'라고 인사했다. 간식을 챙겨주고 싶지만 주인 허락 없이 아무거나 주면 안 되기에 심청이가 좋아하는 비닐봉지라도 따로 챙겨 와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물이든 동물이든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 자꾸 그러한 대상만 보이는 것 같다. 아이 엄마가 되면 아이만 보이고, 아들을 군대 보내면 군인만 눈에 띄는 것처럼. 고양이나 개를 키우지는 않지만 길을 나서면 유난히 고양이나 산책 중인 개에 시선이 간다.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두고 생각하고 말을 걸면 그 사람과 특별한 관계가 된다. 더 발전하면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서로 길들여지기도 한다. 반대로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도 무관심하고 홀대한다면 그 거리는 우주보다도 더 멀어진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는 날이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관찰하며 좋은 점을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그러면 멀리서나마 나의 마음이 공기를 타고서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고양이 심청처럼 뭔가 느끼고 멀리서나마 내게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