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바람에 흐트러지는 11월 첫 주, 우리 부부의 발길을 이끈 곳은 하우현 성당이었다. 화성의 남양성모성지나 광주의 천진암 성지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성당이지만 어느 성지 못지않게 평화롭고 깊은 신심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하우현 성당은 주소부터가 독특하다. '원터 아랫길'로 검색되는 주소를 대충 보면 원터가 아니라 윈터로 착각하기 쉽다. 옛날 역을 뜻하는 '영어 Winter에서 왔나, 추운 곳인가' 하고 상상하면서. 하우현(下牛峴)은 본래 지명(고개 이름)으로 인근에 소가 지나던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고 원터(原터)는 '평평하고 넓은 터, 옛 터전'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사실도 알게 되었다. 혹은 고려, 조선시대 관리들이 공무 출장을 가서 머물던 숙소 터라는 의미도 있다. 가는 길에 이곳에 대한 영상을 보았는데, 하우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다. 옛날 하우 고개를 넘어갈 때' 하우 하우'라는 숨찬 말을 내뱉었다고 해서 하우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 성당은 12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마을 회관 옆에 소박하면서도 깔끔한 성당 입구를 통과하면 본당을 가기 전에 1906년 건축된 건물이 보인다. 지붕은 전통적인 골기와의 팔작지붕이지만 벽은 벽돌로 서양식 석조로 구성된 독특한 양식으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원래 사제관이었지만 지금은 고해소와 면담, 회의 등의 사무로 기능한다는 것을 영상으로 미리 접했다. 또한 경기도 지정 역사 건물이라고도 했다.
하우현 성지가 아닌 성당으로 불리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성지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지 못지않게 많은 신자가 이곳을 찾곤 한다. 우리 부부가 간 날도 전국 각지에서 단체로 온 신자들이 꽤 많았다. 성지는 아니지만 이곳은 그에 못지않은 박해의 역사와 순교자가 있었다. 19세기 초반 하우현 일대는 박해를 피해 모여든 천주교인의 피난처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사제가 되어 프랑스에서 이곳으로 사목활동을 위해 오신 루드비코 신부님이 계셨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붙잡혀 고문을 받다가 순교하셨다. 동상의 설명을 읽어보니 겨우 26세 때에 조선에서 1년여 남짓 활동하시다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셨다. 여러모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떠올리게 했다. 조국도 아닌 타국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던 신부님은 조선으로 파견되기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떠나라. 그리고 돌아오지 마라'
그분의 어머니는 아무리 가톨릭 신부이지만 아들을 보내는 심정이 어떠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이곳은 작지만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기도하기 좋은 곳,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며 묵상하기 좋은 곳이었다. 성지를 방문할 때마다 예수님의 수난기를 표현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려고 한다. 성지는 아니지만 이 성당의 14처(십자가의 길 동상과 기도 구역)는 유난히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동작으로 조각되어 마치 눈앞에서 그날의 비극을 목격하는 듯했다. 특히 한 병사가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 박는 장면과 돌아가신 예수님을 안고 오열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이날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하신 강론이 마음 깊이 남는다. 주제는 '누가 성인인가'였다. 성인은 몇 명인지부터 성인은 누굴 말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으셨다. 대부분 공식적으로 성인품을 받으신 103위를 언급했지만 신부님은 조금 다른 쪽에서 우리의 이해를 도우셨다. 성인(聖人)의 사전적인 뜻(지혜와 덕이 뛰어나거나 순교 등으로 교회가 선포한 사람)을 물으신 게 아니었다.
성인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쉽게 될 수 없는 훌륭한 사람, 모진 고문을 견디고 희생하는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대단한 소수만 성인일까요? 과연 평범한 우리는 결코 될 수 없을까요. 믿음이 약한 보통 신자들은요? 우리는 매일 작은 일부터 거룩한 삶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짜증이 아니라 감사와 희망으로 눈을 뜨고 기도하는 것, 성호를 긋는 것. 쉽지만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면 못하겠지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우현 성당 신부님의 강론에서
그렇다. 안 하면 어렵다. 작은 한 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천리길은 절대 갈 수 없다. 성인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위인이라 칭하며 칭찬하고 감탄하면서도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 한다며 선을 그었었다. 뭔가 역사에 남을 만큼 거창한 일, 기적과 같은 일을 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번 성지에 갔을 때도 십자가의 길을 거닐며 안드레아와 나는 순교 성인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마리아, 만약 조선시대 때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다면 배교하지 않고 견딜 수 있었을 것 같아?"
"아니, 나는 누가 꼬집기만 해도 비명을 지르는데 고문은 견디지 못했을 것 같아. 솔직히 상상만 해도 너무 무서워."
모르겠다.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닥치면 어떤 용기가 날지. 아니면 이날의 대화처럼 인간의 본성에 따라 항복하거나 숨어들었을지. 어쨌든 거룩한 삶, 성인과 같은 삶은 무조건 거창한 일과 강한 의지의 소유자만 가능한 게 아니라 작은 것을 실천하는 태도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식사 전뿐만 아니라 식사 후에도 감사 성호와 기도드리기, 긍정적인 말과 생각으로 순간을 충실하게 살기, 작은 미소와 친절로 사랑을 실천하기 등등. 작고 소박하지만 매일 실천하지 않으면 결코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진리는 바로 이 작은 성당의 가르침이자 메시지였다.
귀찮은 마음으로 미사를 갔다가 많은 것을 받았다. 가톨릭의 미사 전례 때 성당에서 신자는 하얀 밀떡 형상의 성체를 받아 모신다. 하지만 이날은 '성인의 날' 기념과 준 성지의 특별한 미사 예식으로 양형 성체(兩形聖體)를 받게 되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성체를 축성된 포도주에 담가 신부님이 주시면 신자는 '아멘'을 말하고 직접 입에 모신다. 몇 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특별한 경험이라 더욱 기억에 남을 듯하다. 미사 후에는 따뜻한 떡까지 나누어 주셨다. 하우현 성당은 결코 부유하지 않다. 아주 가난한 시골의 성당으로 외지의 신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미사에 참여하는 성소였다. 임시 천막을 개조하여 미사를 드리면서도 이러한 나눔에 아끼지 않는 신부님과 자매님들의 봉사가 행해지는 곳. 그곳에 잠시 머물면서 이 작은 성당은 그 어떤 거대하고 유명한 성지보다 아름답고 따뜻한 곳이었다. 다소 거칠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작은 희생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성지와 다름없었다.
또 이렇게 깨달음을 얻는다. 성인과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천재나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평범한 나도 실천할 수 있는 태도임을. 그곳에서 드린 기도와 배움을 통해 좀 더 인내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십자가를 고백하고 나오는 길이 가벼운 하루로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