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랑 남편, 안드레아가 있는 직장 근처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고깃집이었는데 안드레아가 먼저 자리 잡은 테이블에 물이 놓여 있었다. 누구도 콕 집어서 이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밥을 먹는 동안 나는 그 물병에 자꾸 눈이 갔다. 뚜껑에 적힌 문구 때문이었다.
'물도 음식이다'
당연히 아무런 문구가 없는 것보다 눈에 띄긴 하나, 말도 말 나름이다. 처음 알게 된 개념은 아니나 순간 물도 음식처럼 정말 중요한 거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솔직히 아주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이 아니라면, 물이 맛있지는 않다. 물맛도 서로 다르다지만 그렇다고 맛집의 음식처럼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전보다는 물을 자주 마시려고 하나, 충분하게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물을 자주 많이 마시기가 쉽지 않아서 고민이다. 물은 내게 숙제이면서 죄책감이 들게 하는 애증의 음식이기도 하다.
얼굴에 염증 증세가 있어서 치료하러 피부과에 갔을 때에도 물을 많이 마시라는 말을 들었다. 겨울이기도 했지만 특히 내 피부가 건조해 보인다고 하면서 의사 선생님은 수분 크림 외에 물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고 하셨다. 원래 나는 물을 좋아하지는 않아서 많이는 못 마셔도 틈틈이, 자주 마시려고는 한다. 커피 대신 차, 차나 음료수 대신에 물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기 등 아직까지는 억지로라도 깨작깨작 마시는 편이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섭취하듯 물을 대하라는 메시지는 언젠가 미사 강론 중에 들었던 신부님의 말씀도 떠올리게 했다.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는 성체를 모신다. 죄 많은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여기며 겸손한 자세로 감사하게 여기기에 '성체를 모신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때 신부님은 말씀하셨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예수님의 몸을 받아 마시고 먹으니(영하니) 우리는 우리 몸을 계속 거룩하게 여겨야 합니다. 거룩한 신을 모셨으니 우리는 잠시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계속 우리 몸을 거룩하게 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만큼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취하는 건 그중 하나의 길이 되겠죠. 또한 몸과 마음을 귀하게 여기고 아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음식이란 무엇일까. 단순히 비싼 음식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맛도 좋지만 무엇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음식, 내게 해를 주지 않는 음식일 터이다. 가끔 튀긴 음식, 면 종류 등 맵고 짜고 단 음식을 많이 먹고 싶을 때면 '거룩하게 대해야 할 몸'을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자극적인 음식 섭취 횟수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그래서 운동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생체 리듬이라는 게 있어서 요즘처럼 몸이 무겁고 추워서 움직이기 싫은 계절, 걷기조차 버겁다. 그래도 집 밖을 나서는 것은 좋은 음식, 작고도 바람직한 행동을 내 몸에 선사하고 싶어서이다. 그런 날은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는 데에 의의를 두는' 등 목표를 평소보다 훨씬 하향 조정한다. 그야말로 억지로 칭찬할 거리를 찾는 식이다.
아무리 좋은 말과 행동이라고 해도 내게 타고난 습관이나 버릇이 아니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종종 잊기 쉽다. 그래서 이런 문구를 보거나 말을 들으면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된다. 처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꾸 과거의 편한 습관으로 돌아가려는 나를 발견하기에.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문구 아래 SFG가 왜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식당 이름인가? 집에 와서 찾아보니 saftey flight gear 즉, '생환장구'라는 뜻이라 한다. 항공기에서 쓰는 용어로 사고를 당했을 때 승무원을 안전히 생환시키기 위해 갖추어야 할 낙하산, 신호탄, 보트, 식량 따위의 제반 장비라는 의미다. 마치 무인도나 극한 지방에 홀로 지내게 되면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 내지는 물건이니 이 약자 역시 물의 중요성을 표현한 것이다.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일까. 혹여 다른 뜻이 있는 건지도 모르지만 물을 음식처럼 대하자는 메시지와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손님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며 술이 아닌 물도 잘, 성실하게 마셔달라는 주인의 센스에 감탄하면서도 고마움을 느꼈던 문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