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과 같은 아주 먼 곳에 배치될 수도 있었다. 훈련병 가운데 단 세 명만이 경기도 가까운 부대에 배치되었다고 했다. 행운일 수도, 군의 배려일 수도, 복일 수도, 작은 기도의 힘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감사한 일이다.
남편도 아이가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게 되어 아들이 군대 간 실감이 안 난다면서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눈치다. 나도 그렇다.
후반기 교육부터 지정된 시간, 제한된 시간 동안 아이는 개인 휴대폰을 사용할 수가 있어서 통화 및 검색 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 또한 매번 프리미어 리그니 국내 축구 현황을 일일이 기록하고 보고할 필요가 없어져서 조금 수월하게 되었다.
자대 배치를 받고 전화한 아이의 목소리는 또 달라져 있었다. 1차 훈련병 때 목소리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2차 후반기 교육 때처럼 크고 편안한 목소리도 아니었다. 다소 가라앉고 차분한 목소리로 소곤거리는 듯한 아들의 목소리에 다시 감기가 든 것은 아닌지 물었다.
"여기 다 선임들이라 눈치가 좀 보여서요."
"아, 그래?"
휴일이라 별다른 일정이 없음에도 아이는 새삼 군기가 든 것인지 긴장감이 있었다. 대부분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앉아 있다고 했다. 평소에 '나는 나!'라는 광고 문구처럼 자유 영혼의 대명사이던 아이가 군대라는 곳에서 서서히 그 분위기에 적응해 가는 모습 같기도 했다. 어느 단체이건 원활한 관계와 진행을 위해서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변화가 필요하긴 하다. 기성세대로서, 어른으로서 '당연한 것 아닌가' 하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큰 도전이자 변화이기도 할 터이다.
며칠 후 문자가 왔다. '오늘 병원 갑니다'라는 짧고 굵은 문자. 그 전날 부대원과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고 했다. 통증이 심한지 병원에 가게 되었다고... 평소 같았으면 엄마 특유의 호들갑을 떨기도 하고 조심하지 그랬냐고 한 마디 했을 텐데 그럴 수 없었다. 속으로야 걱정이 들었지만 아이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소식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기특하고 감사했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배가 아파도, 신체 어느 부위가 부러져도 군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래도 내가 걱정할까 봐 그랬는지, 차분하게 말하는 엄마 목소리에서도 본능적으로 느꼈는지 아이는 최대한 밝게 물었다.
"엄마, 얼마 전 축구 봤어요? 태국이랑 한 경기요."
"맞아, 끝에만 봤는데 잘했더라."
아이가 멀리 대학에 가게 되었을 때도, 군대를 가게 될 때도 엄마로서 처음 느끼는 애잔한 마음은 숙명이었다. 매번 처음 가는 길을 함께 맞이하는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나아가고 있다.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서로를 믿고 응원한다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눈에서 멀어져도 마음은 늘 함께하는 관계. 아이가 아픔과 고통, 실패를 겪더라도 잘 일어나길 바라고 믿는 사람이 되는 게 먼저 태어난 어른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가족이라는 보슬비가 내 마음속에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