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을 위한 감기

by 애니마리아

목이 아프다. 기침이 잦아진다. 기침을 하고 나면 목과 흉부가 울리며 아련한 고통이 느껴진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몸이 덜덜 떨린다. 콧물은 줄줄 흐르고 멈출 줄을 모른다. 닦고 또 닦아도 콧물은 계속 나오고 나는 계속 닦는다. 거울을 보니 코가 헐다 못해 피부가 벗겨졌다. 마데카솔을 발라도 소용이 없다. 콧물이 다시 나오고 다시 닦는다. 악순환이다.


임시 거처로 옮겨서 산 지 2주가 지났다. 단순히 춥고 불편함을 넘어 2주 차가 되니 변화는 병으로 나타났다. 아무리 보온에 신경을 써도 워낙 추위를 타는 체질과 환경 변화로 몸이 견디지 못했나 보다. 저 강도이지만 꾸준히 운동하고 좋은 음식을 먹은 게 다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심한 감기에 걸렸다. 다행히 열은 없지만 두통과 몸살이 동반된 증세로 일주일 넘게 삶에 혼란이 왔다.


감사할 일, 내 집에 대한 감사, 안락함, 안정이 주는 혜택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되었다. 너무 힘들어서 주말에 진료를 받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았나 보다. 무려 한 시간 반을 기다려야 했고 할증료까지 내야 했다. 투덜거리는 나를 보고 안드레아(남편)가 말했다. 그래도 주말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이 근처에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냐고. 급한데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응급실을 가지 않아도 되니 정말 그렇다. 감사해야지. 감사할 일이야.


환경의 변화는 이렇듯 중요하다. 내 집이 아닌 곳에서 지내기만 해도 나의 몸은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더 춥고 더 좁고 더 불편함을 아무리 감내해 보려고 해도 몸은 갑작스럽게 강요된 새로운 고난에 호락호락 수긍해 주지 않는다. 기침을 하게 하고 머리가 아프게 하며 콧물로 불편하게 한다.


AI의 물결은 저 멀리 다가오는 파도가 아니라 이미 쓰나미처럼 우리에게 다가왔다. AI의 발전으로 일의 효율, 시간의 절약 등의 멋진 체험을 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해고당하고 AI를 이용해 중요한 시험에 커닝을 하는 등의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이런 AI의 영향을 '전기의 발명' 시대와 버금가는 변화라고 칭했다. 한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 세계를 강타하는 대격변이다. 변화는 적응이라는 필수적인 과정을 필요로 한다. 적응 단계에서 우리는 기침하고 열에 시달리며 온몸이 떨리는 듯한 아픔을 거쳐야 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그 과정 안에 있다. 신종 플루, 코로나 팬데믹 현상보다 더 클 수도 있는 디지털 혁명이 지구를 감싸고 있다. 몇십 년 동안 일어났던 변화가 단 몇 년 만에 새로운 변화로써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학적으로 감기를 없애는 약은 없다고 한다. 단지 증세를 줄이고 회복을 조금이라도 빨리 돕는 약이 있을 뿐이다. AI를 취소하거나 없앨 수도 없다. 늦출 수도 없다. 인류는 변화를 맞고 일부는 희생하면서도 적응하며 살아남는 존재였다.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문제 자체는 인식하고 있다. 역사를 통해 배워왔고 또 힘겹게 적응해 왔다. 그동안은 경험이 쌓여 후대에 도움이 되는 사회였다. 꼰대 소리를 들을지언정 역사의 과오를 통해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일부는 고전처럼 반복해서 적용시킬 수 있었다.

AI 시대에도 그런 선대의, 우리의 경험과 지혜가 함께 어우러져서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심하게 감기를 앓고 나면 다시 건강을 회복하듯 호된 적응기를 거치면 또 다른 건강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제발 그렇기를 바란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소중하고 재능이 있을진대, 모든 사람이 모여 힘을 합하면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AI라는 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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