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행복을 원하는가

by 애니마리아

짜릿한 기분의 행복은 탄산수와 같다. 오래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강렬한 느낌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찰나의 자극을 원한다. 좀 더 나아가서 소확행을 찾고 꿈꾸며 실제로 행복을 느낀다. 타일러 님은 이런 소확행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고 했다. 어제 느꼈던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오늘, 내일도 똑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그래, 이것도 행복이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론 소확행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작가 애나 렘키(『도파민네이션』)의 말대로 인간은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존재이지 않은가. 우리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한편, 내면을 들여다보면 솔직히 어제의 소확행이 365일 늘 같은 크기, 같은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매일 커피를 마실 때마다 너무나 행복해야 하니까.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진짜 기분 좋아서가 아니라 이것도 감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소확행으로 이어질 때가 있는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순히 기분만 좋은 것을 행복으로 정의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즉 쾌락이나 순간적인 만족보다는 인간으로서 충실한 삶에서 누리는 행복을 중요시했다. 바로 '가치 있는 삶'이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음식에서 오는 충만감, 포만감, 혹은 인생의 각 단계에서 이루는 성공, 게임에서의 승리와는 다를 것이다.


자아실현은 어떨까. 경계가 모호한 행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게임과 같은 빠른 행복감은 아니지만 자격증 획득이나 시험 합격은 외부적 요인이면서 내부적으로 자부심을 느낄 만한 행복이기도 하다. 어느 젊은 버스 기사분 말씀에 승객이 감사의 인사를 건넬 때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분에게 소중한 행복의 경험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철저하게 내부적인 행복에 속하는 것도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의 증언처럼 극한의 고통 속에서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남는 자의 행복이 그것이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고 성과를 얻는 행복, 즉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본 행복일 테니까.


외부적인 행복도 내면적인 행복도 다 행복이다. 소확행도 거대한 가치를 추구하며 노력한 후에 받는 행복도 행복이다. 외부적인 행복은 내가 조절할 수 없지만 무료하고 힘겨운 상황에서는 더욱 빛을 발하며 꺼져가는 삶의 불씨를 다시 지펴주는 역할을 한다. 가끔 남편이 '다녀올게' 대신에 '사랑해'라고 인사하고 출근할 때가 있다. 오히려 매일 그랬다면 어느 순간 도파민네이션의 법칙에 따라 감정이 반감되었을 것 같다. 돌이켜보니 내가 우울해 보일 때, 아파 보일 때, 별생각이 없어 보일 때 들려주는 그 한마디가 그 어떤 소확행보다도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가치 있는 삶에서 오는 행복은 쉽지 않다. 타인을 위한 삶, 희생과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이 동반되어야 하는 영웅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죄가 없음에도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힐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이라는 희생을 선택하신 분이다. 인간으로서 생명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에 그분은 행복하셨을까. 신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서 느끼는 행복은 가장 높은 단계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행복, 높은 수준의 행복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나는 소인에 불과하다는 말이 먼저 나온다. 하지만 렘키 박사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우리가 불안하고 공허한 이유는 도파민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의미가 부족해서'라는 말. 빅터 프랭클의 행복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의미를 찾는 과정은 쾌락과는 다르고 종종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는 듯하다. 임신과 출산은 불편하고 힘겨우며 고통스럽지만 새 생명을 보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외부적인 행복은 운에 맡겨야 하니 혹여 받는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러니 내면의 행복을 위해 좀 더 노력하고 싶다. 새해에는 힘겹지만 보람 있는 과정을 스스로 선택해서 체험하고 싶다. 때로는 부담스럽고 종종 실패도 경험할 것이다. 글쓰기, 대학원, 공부, 번역, 가정사, AI 세계에 적응하기 등 수많은 도전 과제와 잠재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빅터 프랭클도 행복을 위해 제시한 방법이 있다.

창조 행위

경험

고통을 겪는 고난 체험에 의도적으로 참여하기

글을 엮어가는 행위도 하나의 창조 행위일 것이다.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여행을 하거나, 뭔가를 배우고 도전하는 행위도 좋다. 운동은 번거롭고 힘들지만 건강이라는 행복을 줄 테니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고 싶다. 살아보면 살아지듯 하다 보면 행복을 느낄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배우는 게 있을 테니. 소확행이든 오랜 고통 후에 느끼는 가치의 행복이든 그 자체를 위한 게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 항상 즐길 수는 없지만 순간에 충실할 수는 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나와 함께 하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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