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총총하늘 님의 서평에 감사하며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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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log.naver.com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있다. 그 배우의 연기력과 일에 대한 근성을 높이 평가하기에 해당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다 영화에 대한 수준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한 작품이라고 해도 나 스스로 배우, 혹은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는 좋은 평가가 나올 수가 없다. 설사 아쉬운 의견이 나온다고 해도 비난이 아닌 건설적인 비판으로 들리기도 하다.
내게는 글벗으로 시작해 마음을 나누고 솔직한 감정도 전하는, 그래도 믿고 수긍할 수 있는 분이 있다. 지인이 많지도 않지만, 있다고 해도 책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벗을 만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게다가 서평은 자발적이 아닌 경우 부탁하기도 어렵다. 서로 부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의 번역서를 읽어 주시고 서평까지 정성스럽게 써 주시는 분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소위 내게는 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분의 시선으로 내가 좋아하는 원작의 내용에 솔직하고 진지한 의견을 표현하셨다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다. 사실 나는 창작자가 아닌 전달자에 불과하다. 그분이 안타깝게 여긴 부분에 대해 공감하며 다시 한번 작품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19세기의 이야기가 사회적, 문화적으로 발전한 21세기의 가치관과 안 맞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번역이 아닌 리텔링(retelling)의 현대적 해석을 거친 작품이 아닌 이상 충돌 지점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문학의 대가 가운데에서도 이 시대와 맞지 않은 사상이나 생각이 드러나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은 재미와 문학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내용상 흑인을 희화해해서 인종차별주의적 요소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금서 목록에 오르거나 학교 교과과정에서 제외되기도 했다고 한다. 흑인 비하 용어가 무려 200회 이상 등장했다고 하며 반사회적 주인공 및 사회적, 도덕적 논쟁이 일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를 비판한 작품으로 여전히 읽히는 고전『암흑의 심연(Heart of Darkness)』의 조지프 콘래드는 또 어떠한가. 높은 문학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를 야만과 침묵의 공간으로 그리고, 아프리카인을 이름도, 목소리도 없는 배경처럼 취급해서 탈식민주의 비평에서도 '문제작'의 사례가 되기도 했다.
원본이 문제가 있더라도 번역자는 그 내용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치부를 드러내듯 문제 자체를 드러내며 독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최초의 독자로서 혹은 기존 작품을 꼼꼼하게 분석하며 만나는 민망한 장면과 내용을 만날 때면 번역을 하지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을 한다고 해도 그 작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선정적인 장면이나 폭력의 장면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감독으로서, 배우로서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본과 영상에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처럼. 그런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단, 비판의 요소가 있음을 해설을 통해서 제시할 수도 있고 그냥 독자를 믿고 맡길 수도 있다. 그 시대는 그런 문제점과 배경이 있었구나 알리는 차원에서 침묵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감독이나 배우, 번역가와 같은 전달자는 '이런 문제점이 있었구나, 그 시대는 지성인조차 이런 편견이 있었구나. 이런 가치를 중요시했구나. 지금과는 이런저런 면이 맞지 않네.'와 같은 생각과 비판의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누군가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해도 원작자가 아닌 이상 지나친 윤문을 하거나 생략할 수는 없으니까.
나는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번역하는 사람으로서 문학의 모든 것을 알지도, 올바른 판단력을 갖추지도 못했지만 하나하나 배우며, 깨달으며 더 나은 글을 써야겠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암묵적 동의'라는 말을 기억하며 더욱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책임을 느낀다. 단순히 광고의 대응이 아닌, 진심 어린 서평과 비평이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