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만 희망한 시간(최재붕 교수님과)

by 애니마리아


1월의 '힐링산책 조찬북클럽'은 참석 여부가 불투명했다. 팔 수술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움직이는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날은 새벽부터 무척 추웠다. 처음에는 지난달 도서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 보다 읽어야 할 분량이 많았고 기술 및 경제를 다룬 내용도 꽤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조찬북클럽 직원분 덕분에 책을 일찍 받을 수 있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원래 매월 정해진 시간에 받아야 하지만 내 사정을 들으시고 두 달 치를 한꺼번에 발송해 주셨다. 제대로 받았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그분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누군가의 배려 없이는 아무리 작은 일도 제대로 완성될 수 없음을 새삼 깨달았고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할 수 있었다. 자유로운 독서가 아닌 약속된 독서였고,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된 만남이기 때문이다.



종종 느끼고 언급을 하는 부분이지만 AI 만큼 혼란스럽고 양가감정이 드는 대상이 있나 싶다.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소식을 챙기기에도 버거울 때가 있다. AI의 쓰나미 속에 살고 있는 요즘 단순히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용은 하나 불충분하다는 소리가 들린다. 뉴스나 전문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다. 단순히 질문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습득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니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플랫폼을 이용해 보라고 하는 조언이 넘쳐난다. 영화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고 코딩도 해 보라 한다. 질문 수준이 훌륭할수록 답변도 잘 나오니 AI 격차의 부익부 빈익빈의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라 한다.



내면의 불안이 커지다 보니 왜곡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질문을 더 잘하기 위해서, AI에 끌려가지 않고 주체적으로 그것을 다루기 위해서 더 똑똑해지고 더 공부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 대체가 아닌 지금 생활과 일 혹은 공부에 첨가해야 하는 1+1의 과제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아시는지 최재붕 교수님은 현재를 읽는 지성으로 강연 시간을 꽉 채우고도 넘치도록 해주셨다. 책은 2024년도 출판물이지만 어느새 2026년 새해가 밝은지 거의 한 달이 되었다. 한 달 전이 다르고 일주일이 다른 세상. 다소 지금과 달라진 세상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실까 궁금했지만 그건 괜한 우려였다. 변하지 않는 추세와 현상을 현재의 변화된 모습과 함께 녹여내며 두 시간이 넘도록 하신 강연이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혼자 책을 읽을 때의 통계와 순위 자료는 눈으로 보되 그 의미와 특징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할 때가 있다. 강연을 통해 우리가 주목하고 생각해 볼 부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격돌 이후 코로나19의 암흑기를 보내는 동안 전 세계 배움의 축은 바뀌었다. 하나의 기준은 자본의 흐름이다. 기업의 가치, 시가총액 순위는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만 대략 기술주 위주다. 코로나 시기 아람코(석유), 엑손모빌(석유), 버크셔 해서웨이(전통 자본), 존슨앤드존슨 등이 상위권에 있었다. 하지만 2024년 2경 2천조 원의 자본이(1위~10위) 거의 AI 기업에 집중되어 있다. 기술주에 대한 미래 성장, 기대치에 대한 투자를 의미한다. 기술주가 아닌 기업 아람코는 6위로 밀려났다. 현재는 어떨까. 2026년 1월 15일 기준 1위 엔비디아는 6,500조, 삼성은 16위 919조였다. 한때 닷컴, e가 붙은 기업에 몰린 것보다 더 편향된 미래 가치 자본의 흐름이다. 옳고 그름, 불편하고 아니고를 떠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초반의 수치를 넘어서는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이야기였다. 분명 기업을 다루는데 그 안에 인류사에서 늘 있었던 '생존의 본능'에 주목했다. 교수님은 기성세대에게 분명 불편하고 힘겨운 발전이지만 결국 AI와 친목을 다질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셨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60대 장년층이 아닙니다. 2,30대의 주축, MZ,잘파 세대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과 동떨어진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리의 현실이죠."



우리만 아니면 될까? 우리의 가족, 조카, 자녀일 수도 있고 멀게는 우리의 노후, 우리의 경제를 짊어지고, 짊어질 세대이다.



생존의 본능과 관성, 안정을 바라는 마음에서 오는 아집과 고집을 꼬집기도 하셨다. 가령 '우버'의 시가총액은 250조 원 전후다. 1월 중순, 현대자동차는 83조 원으로 우버의 3분의 1 가치였지만 우버 운영이 불법인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몇 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국내 노동자의 생계가 걸린 복잡한 문제다. 이런 버팀과 정책을 두고 교수님은 과감하게 말씀하셨다. '현대판 쇄국정책이자 개도국의 관성'이 남아있다고. 씁쓸한 현실이자 가치관을 뒤흔드는 말로 다가왔다. 속으로 너무 심한 지적 아닌가 싶었지만 그분은 역사로 근거를 제시하셨다.



"1885년 근대 학교가 세워지고 한동안 학생이 없어서 폐교된 적도 있습니다. 몇 년간 그랬습니다. 학생이 없었어요. 왜일까요?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불편했고요. 쇄국정책의 영향도 여전했고 신분질서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어요. 당시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고 과거를 보는 게 수백 년 뿌리 깊게 이어져 왔으니까요. 양반, 서민 구분 없이 유용한 근대 교육을 받아들이기가 힘겨웠겠죠. 같지는 않지만 AI 교육, AI 기업, 자본, 경제의 흐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조건 보호 정책만이 답일까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세상은 그렇게 흘러갈 겁니다. 우리도 하지 않으면 경쟁자가 하겠죠."



미국과 중국의 하청업체가 될 것인가, 아예 그 수준에도 못 미치고 도태될 것인가라는 책의 문구가 떠올랐다. 적자생존은 여전히 인간의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는 원리 같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셨다. 대학에서 일어난 논쟁과 더불어 AI의 폐해를 지적하기에 바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일부 교수님이 그러십니다. '그래, AI에 맞춘 교육. 지식 측정 시험의 변화. 필요하지. 좋다고. 하지만 나 은퇴할 때까지는 안 했으면...."



최고의 지성인에게도 AI는 두렵고 불편한 대상이다.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경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도대체 얼마나 빨리 얼마다 많이 변해야 할까. 최 교수님의 말씀도, 기성세대의 마음도 다 이해가 갔다.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맞고, 욕심이 아닌 두려움에서 오는 진심의 호소도 애잔하다.



우리의 현실과 헤쳐나가야 할 문제, 과제에 무거워진 분위기였지만 최 교수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팬덤 경제, 인문학과 예술의 조합, 인간의 겸손한 배움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다면서. 팬덤의 바탕은 실력이며 전통적이지만 제조업 강국인 한국의 장점을 부각하셨다. 일론 머스크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진짜 꿈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다행히 다양한 생각과 개성을 존중하며 키워주자는 생각이 퍼지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AI와 함께 하는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내려는 국민성이 보인다. 60대가 40대를 보고 배우고, 40대가 20대를 보고 배우려는 마음으로 '나는 이미 늦었어'라는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야 할 듯싶다. 좀 더 깨지고, 좀 더 실수하고, 좀 더 적응 시간이 걸리겠지만 사는 동안은 생존을 위해 조금씩이라도 노력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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