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나빠도 마음은 천재Winnie-the-Pooh

by 애니마리아


첫 번째 종이 머릿속에서 울린다. 띵!

'그때 푸에게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똑똑하지 않은 곰 치고는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Then he had an idea, and I think that for a Bear of Very Little Brain, it was a good idea.'(p.137)



똑똑하지 않은 곰이라 돌려 말했지만 직역하면 사실 '뇌가 작은 곰돌이, 머리가 나쁜 곰돌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사실일지라도 동화인데 화자(결국 작가)의 시선으로 너무 적나라한 표현에 웃음이 나면서도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어른 독자로서 다른 어린 독자들의 눈치를.



두 번째 종이 울린다 띵띵!


'가서 좀 살펴봐줘, 부엉이야. 푸는 머리가 그리 좋지 않아서 엉뚱한 짓을 할지도 모르거든. 난 푸를 너무 좋아한단 말이야. 내 마음 알겠니, 부엉이야?



Do go and see, Owl. Because Pooh hasn't got very much brain, and he might do something silly, and I do love him so, Owl. Do you see, Owl?"(p.141)



며칠째 내리는 폭우에 물이 불어나 많은 동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푸를 아끼는 인간 친구, 크리스토퍼 로빈은 부엉이에게 푸의 안부를 부탁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푸를 향한 걱정 하는 마음이 참 착해 보기 좋았다. 하지만 더 눈길이 가는 건 절친이 다시 한번 푸의 낮은 지능을 지적하는 부분이었다. 푸를 머리가 나쁘다고 말하는 순간 웃음이 나오면서도 그래도 그 말은 좀 심한 것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서로 아주 친한 사이니까 가능한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비하가 아닌 애정과 인정 사이에서 나오는 진심일 테니. 머리가 좋지 않은데도 그 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크리스토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친구를 둔 푸는 행복한 곰이다.



세 번째 종이 울린다, 띵띵띵!


'푸가 뭔가 기발한 생각을 제안하자 크리스토퍼는 입을 벌린 채 잠시 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쳐다보았다. 눈앞의 푸가 과연 오랫동안 머리 나쁜 곰이라고 여기면서도 사랑한 곰돌이가 맞나 의아할 정도로.



Pooh himself-said something so clever that Christopher Robin could only look at him with mouth open and eyes staring, wondering if this was really the Bear of Very Little Brain whom he had known and loved so long.'(p.144)



상황은 이렇다. 피글렛이 위험에 빠졌다. 새는 날 수 있고 캥거루는 뛰어갈 수 있지만 작고 소심한 돼지, 피글렛은 작고 연약해서 도망칠 수 없다. 방법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뿐.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는가. 피글렛은 고심 끝에 편지를 써서 병에 넣고 물바다가 된 숲에 병을 던진다. 다행히 푸가 그 병을 발견하나 문제가 있다. 푸가 글씨를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자는 알고 있지만 푸는 거의 까막눈이다. 크리스토퍼가 편지를 읽고 상황 판단을 하지만 역시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푸가 기발한 생각을 떠올리기 전까지. 푸의 아이디어는 재치와 재미가 느껴지고 그럴듯해서 머리 나쁜 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보인다. 오히려 바보를 가장한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귀엽고 기특하고 순수하며 영리하다. 무엇보다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친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마음이 돋보였다.



바보 같음과 영리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푸의 성격을 원서의 어휘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우리가 흔히 쓰는 smart라는 말이 아닌 clever를 쓴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둘 다 '똑똑하다'는 의미가 있지만 smart는 좀 더 학습적, 인지적인 상황에 쓰는 객관적 용어로 보인다. 반면에 clever는 같은 영리함이지만 좀 더 꾀가 있고 재치가 있으며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느낌이다. 공부머리와 삶에서 발휘하는 머리는 꼭 일치하지는 않으니까.



디즈니가 만든 이미지만 생각하다가 원전을 읽으며 활자에서 느껴지는 푸의 매력을 다시 보는 게 좋다. 잠시나마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다.



푸의 뇌는 작지만 마음은 크다


글도 못 읽지만 상상력과 재치가 넘친다


아이큐가 낮을지 모르지만 감성 지수는 높다


생각은 단순하지만 희생정신은 고매하다



어떤 책을 읽든지 좋은 구절, 감동받은 부분, 편견을 깨우치는 부분 등 나의 시선을 붙잡고 뭔가 필사라도 하며 다시 생각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단순히 '충격'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아마 자주 쓰이는 말이라 식상한 듯해서 그럴 것이다. 누군가는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다 하고 누군가는 '책은 도끼다'라고 표현한다.


나의 의식을 깨우는 순간, 구절은 나의 경험과 생각에 따라 다르기에 뭔가 다르게 쓰고 싶었다. 충격이라는 말은 너무 과하고 도끼는 너무 살벌하다. 그래서 멍한 기분에 있다가 갑자기 알람 소리에 살짝 놀라는 종소리를 떠올려 적어 보았다. 작은 뇌를 시작으로 머리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부분을 읽으며 종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종일 울릴 때 이유가 선명하게 바로 떠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잠시 멈추고 다시 읽고 노트에 혹은 블로그에 적을 때 '아, 이래서 내가 멈추었구나. 내게 이런 의미로 다가왔구나'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다. 늘 성공하고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 더 생각한다


친구를 생각한다


어설픈 천재, 그는 곰돌이 푸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하는 똑똑한 소크라테스는 아니다. '나는 머리가 정말 나빠 I am a Bear of No brain at All.'라고 고백하면서도 친구의 사랑을 받는 순수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마음 천재다. 그런 푸를 통해서도 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과연 상대가 똑똑하지 않아도 선한 마음과 개성을 수용하고 사랑하는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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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네이버

The Complete Tales of Winnie-The-Pooh

1996 Dutton Books for Young Rea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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