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ld Robot Escapes4)
로즈는 열심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비밀스럽게 농장 탈출을 계획하고 있다. 자신의 최종 목표는 오로지 아들 '빛나는 부리'와 함께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고향 섬으로 돌아가는 것. 다른 로봇과 다른 사연과 목적을 지니고 있는 로즈의 정체를 알고 있는 존재는 오로지 농장의 젖소들뿐이었다. 우연히 농장주 샤리프 씨의 아이들과 친해졌고 철새처럼 오가던 기러기 무리에서 아들 기러기, 빛나는 부리를 만나는 기쁨도 누렸다. 사연을 알게 된 인간 아이들, 자야와 자드는 로즈의 섬 탈출을 돕게 되고 거사를 도모할 시간은 다가오던 어느 날 로즈는 심경의 변화를 감지한다.
The robot felt something like worry and confusion and guilt.
로봇(로즈)은 걱정과 혼란스러움과 죄책감 같은 뭔가를 느꼈다.
(p.135)『 The Wild Robot Escapes 』
로봇이 걱정이나 혼란스러운 감정, 혹은 뭔가 꺼림칙한 죄책감을 느낀다는 것도 우습지만 가슴 뭉클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계기는 거의 탈출 계획이 마무리되어 기회만 보고 있던 시점이었다. 저녁 준비를 하던 샤리프 씨는 마침 로즈를 집으로 초대했고 그날 일은 면제해 주었다. 자야와 자드도 와서 함께 요리와 차림을 도왔고 즐거운 가족의 시간을 보냈다. 로봇이지만 고용주와 고용인 이상의 관계 속에서 온기를 느낀 로즈는 갈등한 것이다. 과연 이 가족을 떠나는 게 맞는가. 엄마도 없이 자라고 있는 아이들, 아직도 사고의 여파로 몸이 불편한 샤리프 씨, 계속 관리와 돌봄이 필요한 농장의 동물과 기계 등이 로즈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나 감정 표현은 없었지만 로즈의 짧은 감정 묘사를 읽노라니 문장 사이에 숨겨진 그녀의 감정이 그림자처럼 맴돌았다. 인간의 세상에서 관계를 쌓아가며 형성된 정은 고향에서 느꼈던 동물과의 연대와 모성애, 사랑 못지않게 컸기 때문이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말을 한 『어린 왕자』 속 여우의 대사도 떠올랐다.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과 목적을 숨기고 위장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로즈를 가족처럼 대해주고 감사하고 존중해 주는 샤리프 씨 가족. 무엇보다 자신의 도움이 필요할 것을 깨달은 시점에서 로즈의 탈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애당초 로즈는 인간을 돕기 위한 로봇으로 태어났다.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면 전혀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편 『와일드 로봇』에서도 동물들이 자신을 외면하고 왕따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은 그들에게, 그 섬에서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힘들어했다. 외로웠다. 고아가 된 아기 기러기를 키우고 겨울의 한기에 얼어 죽어가는 동물을 도우면서 로즈는 삶의 의욕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농장에서는 어떠한가. 샤리프 씨는 혼자 일하며 가족을 건사할 수 없는 상황이고 아이들은 로즈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좋아한다. 농장의 젖소들마저 로즈에게 정이 들었다. 로즈 또한 열심히 일하며 농장이 잘 돌아가도록 도왔으며 허리케인이 왔을 때는 자드를 구하다 실행 버튼이 나갈 정도로 고장이 심했다.
필요와 정, 사랑, 만남과 떠남, 인간을 걱정하는 기계, 로봇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