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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May 22. 2024

17화 그는 지켜보고 있었다

드 xxx!  드르 xx! 드르르 x! 드르륵! 


 '아, 잠이 들었나 보다. 몇 시지? 뭐지? 시야가 선명하지 않다. 진동음이 울린다. 알람이 울렸나?'


팔을 뻗어 여기저기 더듬지만 평소와 다르게 핸드폰이 손에 금방 잡히지 않는다. 완전히 잠들기 전이였지만 그렇다고 정신이 바로 또렷해지지도 않았다. 시력도 흐릿하고 자면 안 되는데 잠이 들었다는 생각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요즘 두통 때문에 카페인을 줄이고 있어서 커피랑 사이를 두고 있어서 그럴까? 잠이 좀 는 것 같다. 각성제가 아쉬는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에 여러 생각이 스치는 가운데 시야가 서서히 또렷해진다. 어라, 그런데 화면에는 알람 표시가 아니라 아이의 이름이 보인다. 깜짝 놀라서 정신을 바싹 차리고 얼른 버튼을 눌렀다. 자칫 신호음이 끊겨 아이와 통화를 하지 못하면 안 된다는 심리가 작용했다. 반가움에 저절로 각성이 되었지만 어색한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마음과는 다르게 여전히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마!"

 "그래, 아들!"

 "왜 글이 안 올라오노!"


아이는 반은 장난스럽고 반은 서운한 어감을 뒤섞어 인사한다. 아빠가 경상도 출신이라 종종 이런 사투리 흉내로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다. 내 생각이지만 어쩔 때는 서울, 경북과 부대가 있는 인천 지역의 말이 뒤섞여 독특한 화법으로 들리기도 한다.

 

"아, 그게... 요즘 엄마가 기말시험 준비를 하는 중이라 좀 시간이 빠듯하다. 그래도 최대한 끄적대며 올리려고는 하는데...?"

"단어 리스트 말고, 그 저기 있잖아요. 나, 군대 이야기, 뭐 그런 거. 다 읽었는데 새 글이 안 올라오네."

"헉, 정말 다 읽고 있었어? 감동인데. 엄마 글 읽어주는 사람 별로 없는데 한 명 더 늘었네. 웬만한 이야기는 다 쓰고 너도 자대 배치받고 점점 안정돼 가는 분위기라 쓸 소재가 마땅치 않기도 해. 좀 더 기다려 봐. 뭐라도 써 볼게."


'한 주 정도 평소와 달리 다른 글을 썼는데 그것을 집어내다니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여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지껄였다. 짧게 주어지는 핸드폰 사용 시간에도 짬을 내어 전화를 주는 아이 마음이 기특하기도 했고. 


내가 쓰는 글이나 SNS에 대한 말은 아이가 군대가 가기 전에 이미 언급했으나 나의 기록을 읽어보는 것은 순전히 아이의 자유였다. 군대 가기 전 아이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친구들의 SNS를 보기도 벅찼을 것이니 그저 한 두 번 읽어봐 주기만 해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이제 아이는 거의 매주 올렸던 자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궁금했을 수도 있고 엄마와 관심사를 공유하려는 배려일 수도 있다. 그는 지켜보고 있었다. 내게는 관심이 없을 것이라 체념했던 나, 아니 나의 글을. 가까이서 혹은 먼 거리에서 나누는 우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느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커져가는 아이의 모습을 체감하며 세월을 느낀다. 소식 위주로 짧게 전달하던, 작위적인 위문편지는 중단했다. 대신 군대에 아들을 보낸 나의 마음과 추억을 기억하고자 하는 글이 생각지도 못하게 늘어나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위문 에세이라고 해야 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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