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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n 17. 2024

죽음보다 더 슬픈 것은

  별다른 일이 없으면 매년 남편과 건강 검진을 받는다. 갑상샘 질환이나 편두통처럼 30대부터 함께 살아온 질병부터 몇 년 전에 시술, 물리치료, 다시 시술을 반복하며 불완전하게 회복된 상태로 지내오고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 검진을 했지만 전에 없던 증세나 혹은 전보다 더 심해진 증세가 늘어난 까닭에 다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증세가 나빠지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많이 주기에 일이든 공부든 평범한 생활이든 제대로 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검진은 5월 말에 했으나 결과가 나오려면 몇 주 기다려야 했고 결과가 나올 때를 전후로 기말고사가 끝나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전문 병원을 돌며 정밀 검사든 치료든 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우선 안과부터 병원 순례를 시작했다. 시력이 안 좋은 것은 둘째치고 최근에 갑자기 섬망 증세와 시야가 울렁이며 마치 미술의 '마블링(marbling)'기법처럼 장면이 지속되는 증세가 심해졌다. 처음에는 1~2분 정도만 불편하다가 최근에 시간을 재보니 10분, 12분, 그러다가 15분을 넘기도록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우선 불안이 가장 좋지 않은 스트레스 감정이었던 것 같다. 눈이 건조할 때 가던 안과는 하필 여름휴가로 휴진이었다. 30도 이상의 기온에 숨이 점점 막히는 날씨로 움직이기가 힘들었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눈에 띄는 안과를 찾아간 곳에 가서 원래의 지병과 불편한 증세를 함께 상의드렸다. 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고 하셨고 나는 건조증이 심해 인공눈물이 나 많이 처방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눈 내부를 찍은 사진을 보시던 선생님은 오른쪽 눈에 이상한 점이 보인다고 더욱 정밀한 '시야 검사'라는 것을 해보자고 하셨다. 나는 지금까지 시력 검사와 안압 검사를 제외하고 그렇게 많은 검사가 있는지 몰랐다. 시간도 오래 걸렸고 검사 항목만 거의 열 가지에 달했다. 검사 비용까지 만만치 않았지만, 그래도 큰 이상이 없다면 다행이라고, 아니 노화 현상이니 그저 받아들이라는 말만 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나왔다. 녹내장이었다. 처음에 그 진단명을 듣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올해 체력이 급격히 나빠지는 것을 느꼈는데 노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나?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아직 50이 안 되었는데 좀 이른 것 아닌가? 가만 백내장과 차이는 또 뭐지? 이제는 이런 것도 신경 써야 하나?'

  내 이런 생각을 읽으셨는지 선생님은 이내 말씀하셨다. 

  "그래도 초기에 발견하셔서 우선은 약물로 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하지만 녹내장은 완치가 불가능한 질환이에요. 실명할 수도 있고요. 약이 거부 반응이 있다면 결국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약이 듣는다 해도 평생 투여하며 관리해야 합니다. 백내장은 노화 현상 중 하나지만 녹내장은 신경이 손상되는 질환이라 더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게 목표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완치가 불가능하다니. 앞서서 말한 증세와는 큰 연관성이 없고 노화가 직접적인 원인도 아니며 유전의 영향이 크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 또 평생 처방받아야 하는 약이 또 하나 늘다니. 살아온 세월 이상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이런 순간을 마주해야 할 때마다 절실히 느끼고 또 느낀다. 죽음은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건강하게 살다가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고 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골골대고 아파하다가 기본적인 생활조차 제대로 못하고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두렵다. 걱정을 한다고 해결되지는 않지만 서글퍼지는 마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안드레아는 이 소식을 듣고 애써 밝게 말한다. 검진 센터에서 결과와 전문 안과에서 결과가 다르니 더 큰 병원에 가서 다시 한번 검사해 보자고. 나를 위로하는 그만의 배려이자 사랑이고 방법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어디선가 들은 대로 마음을 다스려본다.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관리해야 한다면 관리해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끝이 없을 테니 현실을 받아들이되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겠지. 물론 생각만 한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신체의 기능 불량으로 책조차 읽지 못하는 순간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는 활동을 삐거덕 거리더라도 오래오래 하고 싶다. 내가 이제 세상에서 쓸모없게 된다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나를 지탱해 주는 그 무언가를 하지 못할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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