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주홍글자)를 읽고
제목: 주홍글씨
글쓴이:너새니얼 호손/조승구 옮김
발행: 초판 1977년 7월 30일/4판:2022년 4월 30일
출판사: 문예출판사
* 작품과 작가 소개
- 원제는 THE SCARLET LETTER로 '주홍 글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물론 제목 그대로 번역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나 이 책의 경우 내용상 복수의 개념이 나오는 게 아니고 알파벳 철자 A 하나만 나온다. 따라서 글자의 모양이나 쓰는 법을 가리키는 '글씨'보다는 '글자'라는 표현으로 하는 게 더 낫다는 의견이 있다. 그래서인지 번역본 제목을 보면 십 년 전에 발행된 책인데도 '주홍글자'라고 된 것도 있는가 하면 23년도 출판본인데도 '주홍 글씨'라고 표기된 것도 있다.
-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 : 1804~1864)은 미국 매사추세츠 '세일럼' 출생이다. 구체적 출생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작품 <주홍글자>의 시대적, 공간적 배경과 매우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작품의 첫 장에는 17세기 보스턴(매사추세츠 주) 어딘가의 감옥문, 무덤, 장터를 중심으로 설명이 나온다. 실제 보스턴과 세일럼은 차로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미 북동부 매사추세츠주 안에 있어 역사, 문화적으로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우선 유럽에서 종교의 자유를 찾아온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와서 정착한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로 당시 청교도의 영향력이 컸다. 단 세일럼은 마녀사냥(witch hunt)으로 유명한 곳으로(미국에서도 마녀사냥은 계속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692년 3월 1일에 시작하여 200여 명이 마녀로 고발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 성인 여성이 마녀로 고발당했으며 총 25명이 죽임을 당했다. <주홍글씨>는 17세기 청교도 식민지였던 보스턴을 중심으로 일어난 간통 사건을 설정하여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관계, 언행과 내면을 도덕, 종교, 심리의 측면으로 나누어 매우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호손과 세일럼 마녀 사건은 시대적 간극이 있음에도 관련성이 있었다. 그의 선조 중 존 호손(John Hathorne)이라는 사람이 바로 세일럼 마녀재판 당시 특별재판관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이다. 호손은 이 사건을 미국 역사의 치욕적이고 부끄러운 역사라고 언급하였으며 <주홍글씨>에도 이러한 고백과 문제점을 반영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 작품 속으로
영국 출신의 나이 많은 남편(로저 칠링워드 의사)은 신대륙에 가기 전에 자신은 할 일이 있다며 어린 신부 헤스터 프린을 먼저 보낸다. 자신의 일을 처리하던 중 이방인에게 붙잡혀 2년이 넘도록 미국으로 갈 수 없었다. 신대륙에 홀로 미리 가 있던 헤스터는 남편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듣지 못한 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젊은 목사인 아서 딤즈데일이 새로 부임하고 헤스터와 사랑에 빠졌고 헤스터는 아기(펄)를 낳게 된다.
청교도의 엄격한 윤리가 지배하던 보스턴에서 남편도 없이 아기를 낳은 헤스터가 장터에 끌려 나와 한참 서 있으며 사람들의 모욕과 비난을 듣는 장면이 바로 이 작품의 첫 장을 장식한다. 공교롭게도 이날 구사일생으로 풀려나 신대륙에 도착한 로저 칠링워드는 자신의 아내가 벌을 받는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한편 헤스터는 감옥에 구금되어 있는 동안 스스로 자신의 옷가슴 부분에 A를 새겨 넣고는 오랫동안 그 글자와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재판관들과 유력인사들이 다그치고 협박해도 아이의 아버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끝까지 딤즈데일 목사를 보호한다.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칠링워드는 복수를 꿈꾸고 일부러 목사와 한 집에 머무르며 교묘한 술수를 쓰며 정신적 고통을 가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헤스터의 사랑과 보살핌 아래 예쁘고 귀하게 자라나지만 자의적 타의적으로 고립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칠링워드의 외모와 정신은 피폐해지고 악마처럼 변하고 이를 눈치챈 헤스터는 그를 찾아가 사정하지만 소용없다. 젊은 목사의 신앙심과 명망은 나날이 높아지지만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헤스터와 펄이 고통받는 상황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 몸부림친다. 급기야 자신의 몸에 자학을 저지르며 힘들어하는 동안 칠링워드의 가스라이팅까지 더해져 몸은 점점 쇠약해진다. 수년이 지나고 딤즈데일은 헤스터 모녀와 함께 신대륙을 떠날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대중 앞에 나서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사망한다.
이 작품은 미국의 고전이면서 상징주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먼저 A라는 글자의 의미를 보자. 책 어느 곳에도 직접적으로 A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정 내리지 않지만 문맥상 독자는 사람들이 간통을 의미하는 adultery라는 단어라고 추측한다. 어릴 적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A 글자의 상징과 의미가 소설의 중심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감옥에서 받은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에 전체 내용을 꼼꼼히 읽으면서 A라는 글자는 실제로 받은 형벌이 아니라 소설의 주인공 헤스터가 스스로 단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홍글자의 의미와 느낌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며 다르게 느껴졌다. 재미있는 것은 A의 의미가 점점 바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사람들의 추측에 의존한 서술이었던 만큼 변화된 의미도 사람들의 의식변화를 반영한다. 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헤스터의 삶의 방식, 태도였다. 마을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않았지만 고립된 지역에서 추방되다시피 떠나 바느질을 하며 살게 된 헤스터는 자신을 내친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다. 전염병이 돌자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환자의 집에 찾아가 간호하고 먹을 것을 나누는 등 그 어떤 성녀보다도 아름다운 행위를 몸소 실천한다.
전염병이 읍내로 침입했을 때도 헤스터처럼 헌신적인 사람은 없었다. 재난이 있을 때마다 계절의 여하를 막론하고 전체적이건 개인적이건 가리지 않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그녀는 불행으로 우울해진 가정을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가족으로서 찾아온다. /151쪽
그러면 헤스터의 친절과 봉사를 받은 사람들, 목격한 이들은 어떠했을까?
그녀는 누가 고맙다는 말을 할까 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들을 길에서 만나도 그녀는 인사를 받으려고 머리를 드는 법이 없었다 그들이 한사코 인사를 하겠다고 다가오면 그녀는 손가락으로 주홍글씨를 가리키며 지나갔다. 이런 태도는 그녀의 긍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히려 그녀의 겸손이었으리라./152쪽
그러자 사람들은 헤스터가 달고 다니는 A가 '유능함(able)'을 뜻하는 것이며 심지어 '천사(angel)'를 상징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친절을 베풀고 그에 대한 감사 인사조차 받지 않는 헤스터의 모습에 흐뭇해하면서 말이다.
이쯤 되면 A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헷갈리게 된다. 결국 해석은 각자의 생각을 바탕으로 독자의 몫으로 돌아가지만 단순히 선택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헤스터의 행위는 분명 용서와 자비, 이웃에 대한 사랑, 벌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신에 대한 사랑, 믿음 그 어떤 것일 수도 있고 모두 다 일 수도 있다. 치욕으로 다가온 자신의 십자가를 묵묵히 들고 책임을 졌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십자가마저, 그것도 자신을 단죄한 원수나 다름없는 존재의 십자가와 고통마저 함께 들어준 천사이지 않았을까? 금지된 사랑에 빠져 죄를 지었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행위에 변명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이 호의를 받을까 우려하며 스스로를 벌했다. 그러면서도 딤즈데일처럼 극단적으로 자학하지도 칠링워드처럼 비열한 복수를 꿈꾸지도 않았다. 아이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내었고 희생했으며 마음을 열러 이웃을 도왔다. 어쩌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각자의 주홍글자를 달고 사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인식하고 깨달음의 삶을 사느냐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혹은 거부하고 사느냐는 각자의 선택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