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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Aug 21. 2024

종이 옷으로 연 새로운 세상(THE PAPER BAG)


작품: <The Paper Bag Princess >원서 재독


지은이: 로버트 먼지 Robert Munsch


그림: 마이클 마르첸코 Michael Martchenko


출판사: 애닉 프레스 Annick Press Ltd.


출판일: 4쇄 발행 2019년(최초 발간: 1980년)


장르: 창작 동화 원서 storybook


나의 별점:3.8/5



용이 출몰했다. 한 번 입김을 불었다 하면 주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세상의 어떤 육식동물보다 사납고 잔인하며 슈퍼맨 못지않게 빨리 지구를 비행할 수 있는 용이다. 이 용이 지나가는 곳은 폐허가 되고 동식물 가리지 않고 먹잇감이 된다. 신분이 높은 공주나 왕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림책은 첫 표지가 주는 인상이 매우 강하거나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표지의 그림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야기가 한창 전개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고귀한 신분의 누군가가 용에게 납치되었다. 그 사람을 구하기 위해 용이 사는 소굴로 들어간 주인공,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혹시 이런 추측을 하지 않을까? 


   '공주가 용에게 납치되었나 보군. 왕자가 나설 차례인데? 그런데 표지의 왕자는 행색이 말이 아니네. 머리는 길고 엉망이고 거지처럼 허름한 속옷을 입고 말이야.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 구하기도 전에 용 먹이가 되지 않을까?'



사실 종이 봉지를 거꾸로 입고 용 앞에 있는 사람은 왕자가 아니다. 한때 깔끔하고 귀여운 외모에 비싸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던 엘리자베스 공주였다. 공주 곁에는 훤칠한 외모에 역시 멋진 옷을 입고 테니스를 즐기는 왕자가 있었고 곧 그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어느 날 사나운 용의 횡포에 성은 다 타버리고 왕자는 용에게 납치되었다. 성과 주변은 용의 불 공격에 초토화되고 공주가 입던 옷까지 타버리고 만다. 주위에 남은 것이라곤 종이 봉지뿐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로널드 왕자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서는데... 과연 공주는 무사히 용의 굴에 찾아가 용을 물리치고 왕자를 구할 수 있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적인 동화 대부분은 해피엔딩이다. <인어공주>나 <행복한 왕자>처럼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 어차피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용을 해치우고 결혼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동화는 처음부터 뻔한 공식을 파괴하며 전개되기에 독자는 오히려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공주가 아닌 왕자가 납치되고 힘이 아닌 꾀로 용을 속이는 일이 일어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망가지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용감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공주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목숨 걸고 찾아온 엘리자베스 공주를 맞이한 왕자의 반응은 어땠을까? 꼭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구해 준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여기서 왕자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을 보이고 이에 독자는 황당함,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엘리자베스 공주, 옷차림이 엉망이군! 탄내가 나고 머리는 다 엉킨 데다가 더러운 종이 봉지 옷을 입고 있다니. 공주 옷을 제대로 갖춰 입은 후 다시 오시오.(p22)


Elizabeth, you are a mess! You smell like ashes, your hair is all tangled, and you are wearing a dirty old paper bag. Come back when you are dressed like a real princess.




 '공주는 아름답고 연약한 사람, 영웅에게 주어지는 보상은 늘 결혼'이라는 공식을 철저히 무너지는 과정에서 많은 독자는 당당하고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공주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혹은 꼭 그렇게까지 도도하게 굴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공주의 결정을 존중하는데 그칠 수도 있다. 



 톡톡 튀는 캐릭터의 언행이 뻔한 결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독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반응을 끌어내며 토론하기 좋은 내용이 신선하게 읽힌다. 하지만 아무리 동화라지만 다소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용의 불길로 모든 것이 다 타면서 공주의 옷까지 타버리는데 몸은 멀쩡한 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 봉지만 남았다지만 종이야말로 불에 가장 취약한 물질이라서 이성과 논리를 따지려는 성격의 어린 독자는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마지막에 펼쳐진 장면과 주제를 전체적으로 생각하고 집중한다면 이러한 작은 모순은 너그럽게, 재미있다는 심정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성 역할을 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부모, 자녀가 읽으면 좋을 듯하다. 이 책은 고전적 판타지 배경에서 용과 공주의 밀당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에게 유머러스하게 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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