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아하는 것과 모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모두가 처음 살아보는 인생에서, 경험하지 않고서 누가 싫다, 좋다를 이야기하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모두가 자신이 직, 간접 경험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누군가의 주관적인 의견이 자신의 취향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경험의 불평등을 겪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무작정 비난하고 불평할 수는 없다. 만약 자신이 조금 욕심이 있다면, 배움에 열의가 있고 용기가 있다면 환경적인 요소를 탓하지 않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에서 과감히 걸어 나오길 바란다. 용기가 없다면 용기가 있는 사람을 옆에 두고, 열의가 없다면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을 따라가도 괜찮다.
세상에는 참 많은 지식과 재미와 배움, 앎, 취향들이 있으며 한 인생이 모든 것을 다 깨닫고 배우기엔 인생은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 어떤 곳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자신의 노력이 기꺼이 필요하다.
성악을 전공하고 피아노를 부전공하신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듣고 아침을 맞이했다. 매일 아침 아버지가 선곡해 주시는 클래식 음악에 대해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팝송으로 영어 공부했다는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영어 노래를 듣고 자랐으며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하며 음악에 대한 깊이는 또래보다 깊었다. 피아노 원장님이신 어머니 덕분에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첼로도 배우고 집에는 기타, 색소폰, 단소 등 악기가 정말 많았다. 그리고 초등학생 4-6학년 때는 학교에서 꽹과리를 배우며 상쇠로 많은 무대에 섰다. 음악은 자연스레 내 삶에 들어왔고 나에겐 아주 당연한 취미이자 취향이었다.
반면에 오빠는 외국에 3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외국 영화를 보면 자고, 팝송을 듣지 않고 한국 발라드만 듣는 사람이었다. 취향이라는 것은 참 주관적이어서 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것이 못된다. 나 또한 오빠의 취향을 존중했고, 오빠도 내 취향을 존중했다.
같이 노래 들을 때면 발라드 한 곡, 팝송 한 곡을 들으며 취향을 나누곤 했다. 또 내가 음악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콘서트도 많이 다녔는데, 오빠를 만나고 간 2번의 콘서트는 모두 외국 아티스트였다. LANY 그리고 Ed Sheern. 처음에는 외국 아티스트가 좋아서 간 건 아닐 테다. 내가 너무 좋아하고 가고 싶어 하니 같이 가준 걸 텐데. 이 경험들이 오빠에게는 크게 다가온 것 같았다. 모든 콘서트 경험이 그렇듯 다녀오고 나서 너무 좋았다며 그 아티스트 노래를 듣기 시작해서, 조금씩 다른 외국 아티스트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외국 청소년? 청년들이 듣는 팝들을 듣다가 점점 오빠만의 취향이 생겼고, 지금은 다양한 취향 중에 나와 비슷한 재즈도 정말 좋아한다.
어쩌면 오빠는 음악을 싫어하거나 팝송을 듣기 싫었던 건 아닐 거다. 단지 몰랐을 뿐. 자신의 취향이 뭔지 모르고 매번 익숙하게 듣던 음악만 자신의 취향이라고 알고 있었을 뿐. 그렇게 오빠가 자신의 음악 취향을 찾아가고 나와 같은 취미가 생기면서 스피커가 좋은 곳에서 음악을 틀어주는 bar를 찾아가게 됐다. 그때는 팝송도, 재즈도, 클래식도, 한국 발라드도 들으면서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지금은 둘 다 LP 감성을 좋아해서 일부러 LP bar를 찾아가고 마시지도 않는 위스키나 칵테일을 마시며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최근에 턴테이블도 구입하며 우리만의 LP 들을 모아가고 있다.
사랑하면 닮는다는 말을 믿는다.
하지만 닮은 것 그 이상으로 오빠가 살아오면서 인지하지 못했던 오빠의 감성과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큰일을 해낸 건 아니지만, 오빠에게 좋은 취향을 선물해 준 것 같아서 너무 좋다. 그리고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어 가며 예술적 감성이 생겨나는 오빠도 너무 좋다.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 나누고 또 한동안은 말없이 음악에 깊이 빠져 감상할 수 있는 우리가 너무 좋다.
오늘도 오빠의 멋진 취향과 매력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