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느지막이 일어나 왜 가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지하철에 몸을 싣고 가산디지털단지역과 신대방 삼거리를 오갔다. 아침 10시 출근이라 적당히 업무에 집중될 즈음 점심을 먹었고, 배고픔에 허덕이며 7시에 퇴근해 의도치 않은 외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9시였다. 나에겐 아침도, 저녁도 없었고 출근과 퇴근뿐이었다.
어쩌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넉넉히 출근을 해 저녁시간도 넉넉히 즐길 수 있었다. 어쩌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 당시 나는 아침 시간을 쓰면서 무언갈 하고 싶지 않았고, 저녁 시간에 나를 위한 무언갈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하며 무기력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후, 난 출근과 퇴근을 하지 않게 됐다.
대충 마케터로서의 삶은 큰 의욕도 욕심도 없었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숫자를 분석하기 바빴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일이나 실험을 할 기회는 없었다.
회의감이 들었다.
평생 24시간의 1/3인 8시간을 힘들고 어렵게 보내야 할까,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까, 신나고 재밌게 일할 순 없을까,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실험해보고 동료들과 함께 인사이트를 나누며 즐겁게 일할 순 없을까,
역시 어른들 말처럼 인생은 이리도 쓰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는 걸까, 마지막 퇴근 날, 갖가지의 생각에 빠진채 잠들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온 지 겨우 3개월 되던 날이었다.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아침
그날은 알람보다 눈이 더 빨리 떠졌고, 예상시간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7호선보다 더 헬이라는 2호선 신림역에서 뚝섬역까지 여유롭게 앉아 책을 읽으며 갔다. 결과적으론 큰 변화가 있어 보이지만, 바뀐 건 하나뿐이었다.
나는 놀이터로 출근한다.
7시에 출근하면 4시에 퇴근하는 유연근무제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일찍 와서 어떤 일을 하는 지 확인하고 감시하는 대표님이나 동료는 한 명도 없었다.
출근 후 공기정화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오늘 물을 준 사람에 나의 이름을 표시한다.
내 자리는 따로 없다. 오늘 앉고 싶은 의자를 골라 사무실 크기 만한 테이블 중 원하는 곳에 앉는다.
벽 곳곳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보며 다른 동료들은 어떤 일을 하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좋은 아이디어나 좋은 질문이 있다면 새로운 포스트잇에 작성해 옆에 붙여둔다.
8시, 9시가 되면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 명씩 출근한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사소하고 작고 귀여운 질문들을 한다.
"애니, 오늘 첫 출근인데 기분이 어때요?"
"애니는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됐어요?"
"앞으로 어떤 기대가 있어요?"
"여기서 어떤 실험들을 해보고 싶어요?"
맞다.
오늘은 내가 이 곳에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난 첫 출근한 이 곳에서 나에게 호기심 가득한 동료들에게 무한한 질문과 관심을 받았다.
우리의 첫 일과는 '애니 환영식'이었다.
모든 동료들이 함께 공유 공간으로 나와 미리 준비한 질문을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점심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같이 먹었고, 다른 프로젝트로 함께하지 못한 테디(대표님)는 전화로 한 번 더 환영하고 축하해주셨다.
그날은 다른 동료들이 involve 되어있는 프로젝트 미팅에 참여해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의견을 냈다.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퇴근하기 30분 전 우리는 다시 한 테이블에 모였다. 하루를 회고하며 오늘 일하는 중에 어떤 인사이트가 있었는지, 첫 출근한 내 기분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업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각자의 일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업무를 돕기 위해 서로 질문하고 경청하는 동료들이 있는 곳이고,
출근 첫날, 3일째 되는 날, 일주일째 되는 날, 매번
"출근 첫날인데 어때?" "출근 3일 차인데 어때?" "출근 일주일째인데 어때?"라고 물어보는 대표님이 있는 곳이었다.
'여긴 일터가 아니라 놀이터인 게 분명해.'
나는 내일도 놀이터로 출근한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