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에세이
박완서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첫 장부터 전율이 느껴졌다. 이렇게 짧은 에세이 안에 간결하고도 멋진 문장과, 마음을 밝혀주는 이야기,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적당한 무게가 실릴 수 있다니 감탄 또 감탄했다. 역시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는 이런 것이구나 싶었고,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두근거리는 설렘을 안고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을 만나는 것은 흔하지 않기에 너무도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없이 부드럽기만 한 분도 아니며 인생이 그러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글이 이렇게 소박하고 정겨울 수 있을까,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글은 어떻게 흘러나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왜 제목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일까 궁금했는데, 아무리 조그만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는 글을 쓰고 싶은 작가의 다짐이었다는 것을 읽으며 알게 됐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여기서 허튼소리는 어떤 뜻일까? 쓰다 보면 허튼소리도 할 수 있고 허튼 생각도 생각은 생각 아닌가?라는 물음표가 생겼는데, 그다음으로 쓰인 단어에서 답을 얻었다.
정직하길.
아.. 허튼 마음은 정직에서 벗어난 마음이구나. 거짓이나 꾸밈없이 쓰려는 자세가 제일 기본이 되어야 하는 거구나. 그래야 느려도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는 거구나.
개인적으로 와닿고 위로가 됐던 이야기도 있었다. 매일매일이 바쁘게 돌아갔던 한국에서의 일상을 뒤로하고 캐나다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것이 매우 느리게 느껴졌다. 시속 100km/h를 밟다가 50km/h로 주행하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기도 하고 한국이 너무 그립기도 하고 과연 내 선택이 맞는 것인가 라는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몇 주를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읽게 된 대목.
비켜나 있음을 차라리 편안하게 여기게 되었고, 와중에 있는 것보다는 약간 비켜나 있으면 돌아가는 모습이 더 잘 보인다는 것도 터득하게 되었다. 비켜나 있음의 쓸쓸함과,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 거리를 가장 잘 보이게끔 팽팽하게 조절할 때의 긴장감은 곧 나만이 보고 느낀 걸 표현해보고 싶은 욕구로 이어졌다(p.217)
그래, 어쩌면 이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비켜나 있음으로써 한발 짝 떨어져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시간,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 바라볼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느리게 흘러가는 이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좋은 글은 감사함을 낳는 것 같다. 감탄에서 나오는 감사함, 깨달음에서 나오는 감사함, 교훈을 얻어가는 감사함, 위로의 감사함 등. 이제는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된 이야기를 쓰고자 했던 작가의 글을 읽으며 느끼는 감사함은 영원할 것이다.
같이 들으면 좋을 음악을 선곡해 보았다. 권나무의 빛나는 날들 이라는 곡이다. 우리가 좋은 글을 쫓는 이유는 어쩌면 누군가는 먼저 간 길을 알고 싶은 게 아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완서 에세이는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다. 먼저 사랑하고 먼저 그 길을 가면서 알려주신 것 같은. 그분의 빛났던 날들을 통해 우리의 빛나는 날들을 그려본다.
우리가 모든 걸 미리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먼저 사랑할 수 있을까
누가 먼저 이 길을 지났다면
내게 좀 알려줘 끝이 없을 것 같은 지금이
나의 빛나는 날들
누가 먼저 이 길을 지났다면
내게 좀 알려줘
<빛나는 날들> 가사中
올겨울의 희망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봄이고, 봄을 믿을 수 있는 건 여기저기서 달콤하게 속삭이는 봄에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되 아는 것이 코끝에 걸려 있지 않고 내부에 안정되어 있기를.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사랑이 없는 곳에 평화가 있다는 건 억지밖에 안 되리라.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자신을 느꼈다.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