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소설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세상이 눈밭이 돼버린 어느 날. 오후의 채광이 거실에 오래 눌러앉아 있던.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소리만이 들려오는 적막 속의 고요한 소음. 모처럼 찾아온 여유에 추천받은 책을 읽었고 재훈과 매기의 이야기에 흠뻑 빨려 들어갔다.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륜이라는 소재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은 기분이 이상했다. 이 이야기에 내가 심취해도 되는지, 이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 순수한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지 등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매기란 이름도 애칭이었구나를 중후반부터 알았고, 드러낼 수 없는 관계였기에 제목에서까지 숨겨지는 인물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드러낼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연민이 들면서도 ‘그런데 이게 맞아?’ 하며 계속해서 스스로 반문하며 읽었다. 재훈의 입장에서는 이루지 못한 사랑이겠지만, 매기의 남편 입장에서는, 그리고 매기의 아이들 입장에서는 가정을 등지고 신뢰를 저버린 아내와 엄마일 뿐이니까. 이 둘의 이야기를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러브는 맞는데, 불륜 앞에 사랑이란 단어가 마땅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금희 소설은 처음이고 말로만 듣던 한국 문학의 아이콘인데, 이런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서 무엇을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을까 하며 불륜이라는 주제를 배제하고 생각해 보니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사진에서조차 등장할 수 없고, 그래서 서로가 아니라 풍경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오로지 그때 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며 추억으로는 남아서도 안 되는 사랑은 어떤 힘을 가졌을까? 아무리 그 둘이 먼저였다 할지라도 과거에는 힘이 없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와의 추억이 죄책감으로 뒤엉켜버린 재훈이 조금은 안타깝게 느껴졌다. 돌려받지 못할 사랑을 하는 재훈이야말로 정말 매기를 사랑했다고 해야 할까?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한 죄는 있어도, 그 ‘사랑’ 자체는 진심 아닐까? 아니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범주를 이용하여 우리의 욕구를 정당화하는 데 쓰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이 책을 이해하는데 작품해설이 도움이 많이 됐다. 작품해설을 읽으며 이 소설에서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되새기게 됐고 아래 대목을 읽으며 결국 작가가 던지고자 했던 핵심은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비록 그것이 고통스러운 혼란으로 경험된다고 할지라도, 바로 그 방황이 거치게 되는 복잡하고 다양한 경로 위에서 자신과 타인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감정과 의미를 산출하는 가운데 무엇인가를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과정이야말로 개별적이고도 사회적인 인간의 생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바로 그 생을 충분히 겪어내기 위해서라도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어떻게 하면 방황과 혼란을 피할 수 있는가가 아니고, 피할 수 없는 방황과 혼란을 어떻게 감당하고 자신의 삶으로 만드냐는 것이다.
삶 속에서 너무나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싸움이 아닐까. 한 아이의 위대한 우주인 엄마지만 한 사람으로서 튀어나오는 초자아를 누르려 긴 산책으로 애써 감정을 억제하려 했던, 누구에게는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여자였던, 매기처럼. 그 충돌에 대해서, 그리고 피할 수 없는 그 충돌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생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캐나다로 다시 돌아오기로 한 선택을 두고 아직도 계속해서 마음속 분열이 일어난다. 가족, 일, 사랑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두고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너무 어렵다. 어느 선택에 있어 오로지 나만 생각한다면 조금은 쉬워지겠지만 대부분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이어지는 고민 속 '적극적 순응'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선택할 수 없는, 닥친 운명에 적극적으로 순응을 하게 되면 인생의 회로가 바뀐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살면서 내리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정에 대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감당이라고 바꿔 생각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그 말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조금 알겠다. 책임은 사전적 의미로도 '의무'에 해당한다면 감당은 '능히 해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감당하다의 다른 말은 기꺼이 내 삶으로 만들다 이지 않을까.
마치 빗물이 손바닥을 적시듯 매기가 내 인생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는.
6월의 햇살은 봄의 뒷자락이 남아서인지 목덜미에 늘어 붙는 것처럼 은근했다.
비닐봉지를 묵직하게 누르는 야채의 부피감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당근도 자기 삶을 감당하고 있다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애인이 되어 제주에서 날아올 매기를 기다렸다가 매기는 날개를 먹지 않으니까 그건 내가 먹고 저녁이면 한강으로 나가서 반보씩 간격을 두고 산책 아닌 산책을 함께하고 매기가 가고 나면 조용히 그 일급비밀의 메신저가 울리기를 기다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