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에세이
나는 어린이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p.239)
한국은 애를 키우기 어렵다는 말을 한국 살면서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일까? 미세먼지 때문일까? 아직 애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위 대목을 읽고 나니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어릴 적 5월 5일 어린이날은 생일보다도 더 손꼽아 기다리던 매우 중대한 날이었다. 그런데 캐나다에 오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다. 그 사실이 너무 속상하고 슬퍼 아빠한테 말했더니 아빠는 “여기는 매일이 어린이날이잖아~”라고 말했다. 뭐가 도대체 매일이 어린이날이라는 거지? 선물도 없는데 하고 툴툴거렸던 기억만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에서야 이 책을 통해서 듣게 된 것 같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들여다보며 반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해보게 된다.
어린이를 한 개인으로써 존중하고 환대하는 작가의 생각과 마음이 특히 따듯하고 좋았다. 그리고 이 책을 따라 과거 나의 어린이 세계로 여행하는 느낌도 들었다. 어린이라는 정의가 몇 세까지를 얘기하는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어린이 시절이 유독 생생하게 남아있다. 아마 그것은 어린이 시절 대부분의 기억이 한국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캐나다로 오고 나서는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기에. 초등학교 때 산 돌돌이 색연필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도 그 시절의 나를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버섯을 먹지 못했던 작가가 “나는 미래에서 왔고 너는 나중에 버섯을 모아 전골을 끓여 먹는 어른이 될 거야”라고 과거의 본인에게 말해주는 상상을 하는 대목에서 웃음이 터져버렸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미래에 내가 과거의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뭐라고 전해야 할까?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p.53)
<무서운 일> 파트를 읽으며 에피소드 하나가 생각났다. 전철이 지나가는 굴다리 아래를 지나갈 때 엄청난 용기와 다짐, 각오, 희망과 체력이 필요했다는 김소영 작가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릴 적 살던 동네 놀이터에 있던 구름다리가 생각났다. 그때 기억으로는 높이가 꽤 있었는데 아마 지금 다시 보면 2M 이내 정도의 높이였지 않았을까 싶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구름다리였는데 타고 올라가서 발이 빠지지 않게 중심을 잘 잡고 반대편으로 건너는 게 하나의 놀이였다. 나보다 어린아이들도 우쭐거리며 잘 건넜는데 나는 반대편에서 누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도무지 건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매번 ‘용기와 다짐, 각오, 희망과 체력’을 가지고 올라갔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 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잠시 여행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친했던 이웃들과 살던 동네에서 모이기로 했다. 그때 나이가 중학교 2학년 정도였는데 문뜩 그 구름다리가 생각났다. 이제는 건널 수 있겠지 하며 엄청난 자신감으로 다시 그 놀이터를 찾았다. 하지만 우습게도 여전히 그 구름다리를 건널 수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 후로 마치 영영 깨지 못한 어떤 퀘스트처럼, 두려움으로 어떤 일을 주저하게 될 때 종종 끝내 건너지 못한 구름다리를 떠올린다. 나는 아직도 가끔 내가 그때 그 구름다리를 건넜더라면 조금 더 대범하고 진취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어린이가 있음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막다른 길이 아닌 무한한 갈래로 뻗어 나가는 희망의 길이지 않을까. 살면서 어른이의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 어린이라는 세계로 들어가 위로를 구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여름날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외침을 오래오래 들으며 곁에 가까이 두고 살고 싶다는 마음도 함께.
재주소년에 <귤>이라는 노래를 선곡해 보았다. 1분 30초 구간부터 나오는 어린이들의 티 없이 맑은 목소리가 너무 귀여워 매번 들을 때마다 기분이 귤귤귤 해지는 곡이다.
서로 몸이 달라도 같이 놀자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더군다나 속으로 읽기 시작하면 성큼 자기 세계로 들어가 버려 어른과 어느 만큼 거리마저 생기는 것도 같다.
이 책이 선생님한테 있잖아요? 하지만 다 똑같은 책이어도 이 책엔 제 마음이 있어요.
나는 밥을 먹을 때 내가 삼키는 음식물이 선생님이 계신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어린이가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살펴보는 일은 어린 시절의 우리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고 세계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었는가를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