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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희 May 01. 2024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줌파 라히리



'다른 세상 쪽으로 기꺼이 문을 내는 사람'



|| 끄적임


이탈리어로 ‘문’을 뜻하는 단어 ‘porta’는 ‘가져오다’라는 동사 ‘portare’에서 나왔고, 다시 이 단어가 ‘sollevare’ 즉 ‘올리다’라는 뜻을 가지기도 한다니, 그것이 “로물루스가 쟁기로 도시의 담장을 배치하며 정확히 출입문(porte)이 세워질 위치에 담장을 올렸기” 때문이라니, 근사하지 않은가. 


언어는 문과 같아서 하나의 장소에서 또 다른 장소로 넘어가는 출입지점이 되어준다. 하지만 문을 열어야만 다른 세상으로 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벽이나 다름없다. 줌파 라히리는 번역이라는 세계를 통해 언어와 문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우리에게 문을 열어준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한국어를 국어로 배운 것은 열두 살이었다. 그 후 영어는 내게 국어이자 생존이었다. 물건을 사려면 친구들과 어울리려면 공부를 하려면 어디를 가려면 영어를 해야 했다. 꿈을 영어로 꾸면 진짜 그 언어가 편한 거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매일 아침 일어나 어젯밤 내 꿈이 영어였는지 한국어였는지 되감기 해보던 날들이 있었다. 영어와 한글 사이를 오가며 그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사는 일이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1+1이 된 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원인은 아마 나라는 사람의 뿌리에 있었던 것 같다. 언어와 문화는 서로 밀접한 관계로 묶여 있기 때문에 한국어가 나의 고유성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 어딘가에 있는 마음과 자각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래서 그 어느 쪽에도 명확히 나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하고 외롭게 느껴질 때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내 안에서 진행되는, 이전의 삶과 현재의 삶이 융합하고 과거와 미래가 연접하는 과정을 계속 의식하고 있다. 옳든 그르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접목은 지속된다.


하지만 줌파 라히리는 이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했다. 접목, 즉 나와 새로운 세계가 접목되어 새로운 품종으로 길러진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다른 존재에 접목함으로써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관점에서 본다면 꼭 ‘A’ 거나 ‘B’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나만의 고유의 언어를 찾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의 문체가 그렇게 탄생했듯이 말이다. 


줌파 라히리는 본인이 번역가의 기질을 타고났으며 본인의 가장 큰 욕망은 이질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책 또한 그녀의 이야기를 누군가가 옮김으로써 한 번역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듯이, 번역이란 이야기를 본연의 것 그대로 옮김으로 그 이야기가 더 넓은 곳으로 향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 책갈피

왜 이탈리아어냐고? 문을 열려고, 다르게 보려고, 나 자신을 다른 존재에 접목해 보려고.
책을 번역하는 일은 책과 관계를 맺고 책에 다가가 동행하는 것이고, 낱말 하나하나를 내밀하게 알아가는 것이며, 그 사귐의 보답으로 돌아오는 위로를 만끽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진공상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번역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어떻게 말들이 서로 꿰이며 어떻게 중첩되고 어떻게 그 어지러운 조합이 비옥한 결실을 맺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부재를 태양 아래 뿌리내린 모든 푸르른 것들로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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