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를 부르는 카타르시스 글쓰기
벌써 20일째, 나는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일요일 하루만 쉬었을 뿐, 나머지 날들은 단 한 편도 거르지 않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화면에 알람이 뜬다. 화요일 연재 – 심리학 에세이 “심리학과 함께하는 내 마음치료-행복을 선택할 권리.” 마치, 오늘은 이 글을 써야 한다는 무언의 재촉 같았다.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행복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결국 내 안의 선택이라는 심리학적 통찰, 그 이야기를 내 인생과 겹쳐서 써 내려가면 어떨까? 마치 오랫동안 품어온 비밀을 조금씩 꺼내놓듯이 풀어볼까...?
하지만 솔직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억지로 키보드 앞에 앉아 단어들을 끌어내려면 할수록,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글은 써지지 않았고,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밀려오려는 순간이었다. 바로 그때, 내 손가락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스 신화, 신학, 그리고 심리학적 상상들이 뒤섞이며 전혀 다른 글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판타지 소설이었다.
20일 동안 ‘심리학’과 나의 ‘삶’을 녹여내며 글을 쓰던 내가 난생처음 판타지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순간, 독자들과 약속을 어길 것만 같았던 오늘, 오히려 나는 진짜 ‘나’를 만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60이 될 때까지 사실 판타지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 오히려 ‘그건 아이들이나 좋아하는 것’이라며 단정 지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이 나이에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다니…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걸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혹시 이 현상이 내 무의식이 보내는 어떤 신호는 아닐까 하고 차분히 내면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과연 이것은 심리 치료가 필요한 증상일까?
심리학은 조용히 대답했다.
아니요, 당신은 이미 가장 강력한 치유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심리학 글쓰기에서 벗어나, 브런치의 연재 규칙을 허물면서 까지 나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판타지 글쓰기에 푹 빠져 있는 나의 심리적 증상은...?
내 안에 쌓여 있던 창조적 에너지를 터뜨리는 가장 건강한 해소 방식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판타지 속 인물들의 삶과 고민을 설계하는 과정은, 마치 '놀이치료'처럼 내 무의식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색하는 시간이 되었다.
성경 속 욥의 고통을,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갈등을 다시 해석하면서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생각을 조용히 재배치할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왜 판타지 소설에 꽂혔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았다.
나는 20일 동안 매일 글을 쓰며 두 가지 큰 선물을 받았다.
심리학은 나를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감정과 충동을 외면하지 않고,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 이해를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를 주었다.
지난 20일 동안의 꾸준한 글쓰기는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창조성을 날마다 깨우는 의식 같은 과정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무의식이 보낸 신호를 놓치지 않고, 곧바로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심리학은 내 내면의 지도를 펼쳐 보였고, 글쓰기는 그 지도를 따라 걸어가는 발걸음이었다.
오늘 원래 제목이었던 ‘행복을 선택할 권리’ 대신, “나는 왜 판타지 소설에 꽂혔을까?”라는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바로 지금, 나는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선택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행복은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창조의 과정에는 두려움과 막막함이 따른다. 그러나 그 두려움 속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하기보다, 그 과정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야말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길임을 이제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