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집착의 경계에서

‘사랑’이라 믿었다.

by 애니유칸
내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기적 같은 아이를 잃고 싶지 않았다.


첫 아이를 먼저 떠나보낸 뒤,

둘째 아이가 내게 왔을 때, 나는 이 아이를 지키는 것이 내 삶의 유일한 목적이라 믿었다. 혹시라도 다칠까, 사라질까 노심초사하며 나의 모든 커리어를 포기했다.


주위에서는 '지극정성’이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지나치다 말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키우는 것을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한순간에 흔들리게 되었다.

성인이 된 아들은 자신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내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학의 도움을 받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엄마의 행동이 '집착'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내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엄마는 나한테 의지하는 거야
아니면 집착하는 거예요?

의지라면 몰라도 집착이라면
하지 마세요!


그 한마디는 비수처럼 날아와 내 심장에 박혔다. 내가 그동안 바쳐온 모든 것이 '집착'이었다니...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던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나는 애써 담담하게 대답했다.


집착은 아니야.
네가 어렸을 때는 너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고, 네가 커서는 엄마가 너에게 의지한 것이 맞다.


나의 대답에는 솔직함과 함께, 어떻게든 내 행동이 '집착'만은 아니었다고 부정하고 싶은 간절함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아들의 용기 덕분에 나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나의 내면을 직면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내 마음속 그림자와 마주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아들이 던진 질문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심리학으로 들어갔다. 그렇다고 심리학으로 내 삶의 오점을 지우기 위함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상처와 아픔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주기 위함이었다.


‘애착이론’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PTSD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첫 아이를 잃은 깊은 상실감이 내 마음속에 외상으로 남아 있었음을 깨달았다.

다시는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적인 두려움이, 둘째 아이를 향한 ‘과잉보호’와 ‘통제욕구’로 이어진 것이다. 아들이 '집착'이라고 느꼈던 나의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자율성 발달'을 방해하는 행위였다.


나는 아이가 스스로 넘어지고 일어설 기회를 빼앗고,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했던 것이다. 엄마의 통제 아래 있어야만 안전하다는 비합리적인 믿음이 아이의 삶에 무거운 그림자로 작용했던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엄마의 행동을 집착이라고 느꼈다면 미안해
하지만 그건 집착이 아니라,
너를 잃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이었어


라고 고백했다.

아들은 그제야 내 눈빛에서 사랑을 보았다. 그리고 '집착'이라는 말에서 자유롭고 싶어 하는 나 자신에게도 답을 했다.


사랑과 집착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심리학은 그 미묘한 차이를 규정한다. 사랑은 상대의 '자율성(Autonomy)'을 존중하고 '안정적 애착(Secure Attachment)'을 형성하려는 건강한 심리에서 비롯된다. 반면, 집착은 '불안정 애착(Insecure Attachment)'을 바탕으로, 상대의 삶을 내 마음대로 '통제(Control)'하려는 비합리적인 욕구에서 나온다.


비록, 내가 겪은 상실의 고통이 나를 집착으로 이끌었지만, 그 상처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더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심리학적 증거이기도 하다.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믿어주는 것이지만, 집착은 상대를 통제하고 내 불안을 해소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심리학이 아니었다면 나는 아마 평생 그 차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온전히 느끼고 주고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상처와 두려움이라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그 그림자가 사랑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실의 고통 속에서 나는 아들에게 지극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믿고 있던

사랑이 아니라, 아들에게는 집착으로 느껴진 것이다. 결국 내 마음속 불안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역동'은 비단 부모와 자식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데이트 폭력

연인 관계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다.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이 건강하게 채워지지 않을 때, 그 결핍은 상대를 소유하고 통제하려는 '집착'으로 변질된다. 이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집착하며, 때로는 상대의 삶을 파괴하려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소위 '데이트 폭력'이라고 불리는 행위의 심리적 기저에는 바로 이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이 숨어있다.

내가 아이에게 느꼈던 감정이 그토록 끔찍한 결말로 이어질 수도 있었음을 깨닫자, 나는 비로소 내가 얼마나 위험한 길을 걷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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