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S: 나 자신과의 만남
내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텅 빈공간이 있었다.
부엌 한가운데 빛바랜 식탁이 놓여 있었고.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분의 부재는 단순한 물리적 빈 공간이 아니었다.
익숙한 어머니의 한숨 소리가 가득한 저녁,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싸늘한 바람처럼 내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정서적 결핍이었다.
그 공허함은 곧 미움으로 싹텄고, 마치 콩 가지가 자라나듯 그렇게 내 마음속에 엉켜져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아버지의 부재가 곧 어머니의 고통이고, 우리 가족의 불행이라는 단순한 등식을 마음속에 새겼다.
아버지를 향한 미움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나 자신을 규정하는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수십 년간 내 삶을 짓눌렀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그 돌덩이를 짊어진 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허함에 시달렸다. 끊임없이 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갈망하는 것으로 내면의 빈자리를 채우려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늘 갈급했고, 삶의 굴곡이 생길 때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상처를 들추며 이 모든 것이 아버지 탓이라고 원망했다.
그러다 문득, 내 삶의 발목을 잡고 있는 심리적 문제가 과거의 상처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절박함이 심리학의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에서 나는 닥터 리처드 슈워츠(Richard Schwartz)가 창시한 IFS(내면 가족 체계)라는 새로운 심리학 이론을 만나게 되었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자아 파트(parts)'로 이루어져 있고, 이 파트들이 하나의 가족처럼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내면 중심에는 온전하고 지혜로운 ‘진정한 나(Self)가 존재하며, 나머지 파트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역할을 맡는다는 심리학 이론이다.
내 안에는 과도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관리자(manager)' 파트와 감정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즉흥적인 즐거움에 매달리던 '소방관(firefighter)' 파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파트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가장 깊은 상처를 간직한 ‘어린 시절의 나’라는 파트가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IFS 심리치료사의 안내로 내 내면의 세계로 깊이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주 작고 연약한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는 거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공포와 무력감으로 작고 좁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순간 마음속에 뒤엉킨 콩가지들이 제각각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곁에 조용히 다가가서 아이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이제 혼자가 아니야."
그 작고 불쌍한 아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왜 그렇게 슬퍼하고 있니?"
아이는 힘없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가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나는 너무 약하고 쓸모없는 아이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던 어린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무력감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진심을 전했다.
“괜찮아.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는 한쪽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으며, 맑고 초롱 초롱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킬 수 있어.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고, 너를 보호할 충분한 힘이 있어"
“더 이상 혼자서 아파하지 않아도 돼, 나와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가자."
내 과거 내면세계에 웅크리고 있는 그 아이를 어둠 속에서 현재의 밝고 따뜻한 나 자신에게로 데려왔다.
어린 나는 평생을 짊어져 온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엄마를 돕지 못했다는 ‘자책, ‘죄책감‘, ‘수치심',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엉켜 있었다.
나는 그 짐들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꺼내 내려놓게 했다. 그 짐들이 사라지자, 아이의 얼굴에는 해맑은 웃음이 피어났다. 그러나 아이를 떠나보내지는 않았다.
그저 더 이상 고통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존재가 되어 내 곁에 머물게 했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하는가?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대신, 나 자신을 온전히 치유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미움과 용서 사이의 경계는 흐릿해졌고, 그 자리에 내 마음을 치유하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그 오랜 아픔은 나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상처에 갇혀 있지 않다.
과거의 상처 입은 어린 나는 이제 내 안의 평온한 한 부분이 되었으며, 나는 그 과거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