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의 '페르소나'

프로필을 다시 쓰다.

by 애니유칸
브런치에 글을 쓴 지 30일째,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브런치를 확인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여느 때처럼 피드를 훑다가, 짧은 글귀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로필부터 바꿔라” 10년 차 작가의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순간 가볍게 스칠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나는 그동안 브런치 프로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다.

그저 블로그에 자기소개글 몇 줄 쓰듯 가볍게 적어두면 된다고 생각했다.

글의 가치는 결국 내용에 있는 것이지, 프로필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아침 한 줄의 글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프로필을 바꾼다는 것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겸손이라는 이름의 가면

브런치는 단순한 기록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나를 ‘작가’라 불러주고, 나의 글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과 연결해 주는 특별한 곳이다.

글 쓰는 이도 읽는 이도 모두 작가다. 그런데 나는 브런치에서 쥐뿔도 없는 주제에 ‘겸손’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동안 나의 프로필은 내 얼굴이 아니라, 스스로 닫아둔 창이었다. ‘겸손해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다는 합리화로 내가 걸어온 길과 쌓아온 시간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돌아보면 그것은 겸손이라기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혹여 내가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내 삶의 이야기를 가볍게 줄여 버렸던 것이다. 물론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나를 공개하는 것이 꺼림칙했던 마음도 한몫했다.


나의 뿌리를 다시 꺼내다

나는 프로필을 다시 쓰기로 했다. 처음엔 막막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으로 소개될 수 있을까? 머뭇거리던 순간 책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정겹게 떠올랐다.


대학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던 기억, 출판사에서 밤을 새워가며 원고를 읽고 편집했던 순간들. 그 시간들을 떠올리자,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책과 함께 살아왔다. 읽고, 쓰고, 배우며 때로는 그 글을 세상에 내보내기도 하면서, 그것이 바로 내가 글을 쓰는 뿌리였다. 그런데 왜 나는 그 근원을 숨기려 했을까? 왜 작가 프로필에는 그런 나의 모습을 남기지 않았을까?

오늘 아침, 읽은 단 한 줄의 글이 나의 정체성과 마주하게 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었다.


불편함을 넘어선 용기

나는 언제나 나를 드러내는 일에 서툴렀다. SNS에 글을 올리는 것도, 내 이름 앞에 어떤 타이틀을 붙이는 것도 어색했다.

마치 나에게 두꺼운 가면을 씌우는 사회적 페르소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내 지나온 시간을 적어 내려갔다.


책을 사랑했던 경험, 도서관에서 보낸 세월, 출판 일을 하며 책을 만들었던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일부였음을 인정하며 프로필에 담았다.

그렇게 써 내려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마음속 불편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오랫동안 나를 짓눌렀던 정체 모를 감정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살아온 삶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순간, 두려움과 주저함도 함께 씻겨 나갔다.


정체성을 찾는 일은 나를 존중하는 일

프로필을 바꾸면서 나는 비로소 정체성을 다시 찾았다. 그 정체성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가 오랫동안 책과 함께 살아왔다는 사실, 그 시간을 통해 배운 것과 쌓아온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그 사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오늘 비로소 깨달았다. 정체성은 숨겨야 할 짐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겸손은 정체성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을 드러낸 후에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제 브런치는 더 이상 단순한 글쓰기 플랫폼이 아니다. 이곳은 내가 나 자신을 드러내고,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존중하는 자리다.

프로필을 바꾸는 것은 그저 몇 줄의 작가 소개를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인정하는 깊은 행위였다.

이제 겸손이란 이름으로 내 삶을 숨기지 않겠다. 내가 걸어온 길을 당당히 보여주겠다. 그것이 나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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