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旅行事) 새옹지마(塞翁之馬)?

포르투갈(Portugal), 오비두스(Obidos)

by 작은 행복

친구와 둘이 포르투갈(Portugal) 음주(?) 여행 당시 리스본(Lisbon) 근처에 있는 소도시인 오비두스(Obidos)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중에 우연히 읽은 글에 의하면 오비두스는 옛날에 어떤 로맨틱한 왕이 청혼의 의미로 여왕에 선물한 작은 도시였는데, 그 후대에도 왕이 왕비를 위해 결혼선물로 이 도시를 주는 전통이 어어져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으로 "여왕의 마을" 혹은 "왕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오비두스는 리스본 여행 중에 친구가 가보고 싶어 한 곳이었다. 도시 한편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성곽길에 올라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예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여행지에서만큼은 높은 곳에 올라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보기를 좋아하는 나는 흔쾌히 찬성했다. 가는 차편이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현지 시간으로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 오전 9시나 10시쯤 도착했던 것 같다. 도착하고 보니 현대적인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작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중세시대에 시간이 멈춰진 듯 다니는 차들이나 길가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들이 없다면 마차나 말을 타고 지나가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주말이라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도시 풍경을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어서 성곽길을 찾아갔을 때 나와 내 친구는 나지막하게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성곽길은 그야말로 중세시대 그대로였다. 잡고 올라갈 난간도 아슬아슬, 위쪽의 성곽담장도 나지막하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고,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의 폭도 엄청 좁아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성곽에 올라가기도, 난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 보기도 쉽지 않았다. 미리 이것저것 알아보고 갔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무 생각 없이 가다 보니 생각보다 흥미를 가지고 관광할 만한 것도 많이 보이지 않았다.(그렇다고 아름다운 도시 내 성당들을 지나치지는 않았다.)

아쉬워하면서 쇼핑거리로 나왔을 때, 우리는 이번에는 탄성을 내뱉게 된다. 줄지어 선 체리주(포르투갈의 전통주인 진자 Ginja)를 담은 초콜릿잔과 정어리 통조림으로도 유명한 오비두스이지만, 무엇보다 포르투갈 전통문양인 아줄레주(Azulejo)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아름다운 골목골목의 소박한 풍경들이 우리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결국은 아줄레주 문양의 냄비받침과 치즈플레이트, 염소치즈 등등을 구입하고, 작은 골목골목 사진을 열심히 찍고 나서야 제정신이 돌아온 우리는 몹시 배가 고파졌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간단히 때운 빵으로는 허기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탓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구글맵을 뒤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이 작은 도시(실제 인구가 3천 명 정도라고)에 우리가 믿고 갈만한 후기를 가지고 있으며,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식당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곧 불안해졌다. 이러다 돌아갈 차를 놓치거나 점심을 굶게 되겠구나. 결국 모험을 하기로 하고, 내가 고른 레스토랑을 오픈런하기로 했다.

12시쯤 문을 여는 곳이었는데 오늘 영업을 하는 건 맞겠지 내심 불안해하며 문 앞에 서있을 때, 사람들이 하나둘 우리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역주민들인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라, 이거 로컬맛집인가 본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아름다운 야외테이블과 평화로운 분위기는 물론이고, 그곳에서 마신 샹그리아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최고였다고 얘기할 정도로 포르투갈에서 마신 것 중 최고였다. 식사로 주문한 부드러운 뽈보도, 고수를 곁들인 양갈비 스테이크도 너무 훌륭해서 이 레스토랑을 오기 위해서 오비두스를 온 것으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반이나 먹은 양갈비에서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나오기 전까지는.

머리카락을 발견한 순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지만 이런 일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어도 얘기는 해주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대로 나는 직원분을 불렸고, 머리카락을 보여주었다. 내가 머리카락을 발견했는데 길이나 색깔이 우리 건 아닌 것 같다고. 직원분은 곧바로 사과했고, 양갈비를 다시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많이 먹었고, 배가 불러서 다 먹지도 못하면 아까우니 괜찮다고 했지만 남은 것만이라도 다시 해주고 싶다고 해서 접시를 보냈다. 양갈비 스테이크는 완전한 한 접시로 돌아왔고 우리는 배가 불러 다 먹을 수 없었다. 머리카락이 나왔을 때는 정말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진심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정도로 만족했던 식사였고 우리는 그저 웃었고 행복했다. 그곳은 테이블에서 영수증을 받고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나오면서 계산을 하는 곳이었는데, 계산하면서도 사과를 받았고 심지어 그 양갈비는 돈을 받지도 않았다. 계속 괜찮다고 하는데도 계산하지 않겠다고 하니 오히려 우리가 조금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오비두스에서는 내내 좋은가 싶으면 별로고, 별론가 싶으면 또 신나고, 신난다 싶으면 당황스럽고. 조금 과장하면 길흉화복이 예측할 수 없다는 인생사(人生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했던 옛이야기가 떠오르는 하루였다. 그래도 얼마 전 TV에 소개되는 그 레스토랑을 보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친구와 통화하면서도 아직도 그 집 샹그리아가 최고라는 것과 양갈비가 고수랑 진짜 잘 어울렸다는 얘기만 하는 것을 보면 여행은 즐거웠던 일, 좋았던 일이 더 기억에 남는가 보다.

여행에서만큼은 크게 낙담할 수도 마냥 좋아할 수도 없는 "변수"라는 것이 언제나 존재하기에 그 하루가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 여행사 새옹지마는 꽤 매력 있다.



아슬아슬한 성곽길과 그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풍경.


그냥 찍어도 너무 이뻤던 오비두스의 골목골목.


완벽했던 한 상이었는데... 문제? 의 양갈비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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