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운전합시다.
몇 해 전, 약 1년 반 사이에 교통사고를 4번이나 당한(?)적이 있었다. 중대한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원에서 MRI를 찍어봐야 하는 사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상대과실로 인한 가벼운 접촉사고였다. 4번 다 상대과실 100%로 나왔을 정도로 그야말로 나는 가만히 있는데 상대방이 와서 들이받은 사고들이었다. 모든 차들이 내게로 덤벼드는가 싶어 차만 서면 룸밀러로 뒤를 살피는 트라우마가 생긴 시기였는데 그중 첫 번째 사고는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여느 때처럼 좌회전을 해야 하는 사거리에서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측에는 차선이 하나 더 있었는데, 길 옆에는 큰 주유소가 있었다. 그 주유소에서 차가 한 대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내차의 조수석 뒷부분을 박아버렸다. 천천히 우측으로 꺾어 나오는 것 같았지만, 부딪혔을 때 제법 소리가 쿵하고 크게 나고 차도 크게 출렁거렸다. 아니 주유소에서 나오는데 차선을 하나 건너와 옆차선 차를 박는다고? 이게 실화인가 싶어 내가 놀라 어버버 하고 있는 중에 그 차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그대로 회전을 하면서 조수석 뒷좌석부터 앞 좌석까지 주욱 긁어 버리고는 쿨하게 전진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급하게 클락션을 울렸는데, 상대는 그대로 다시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갈길을 갈 모양새다. 급기야 나는 조수석 쪽 창문을 내리고 계속 클락션을 울리면서 차를 세우라고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내쪽의 좌회전 신호를 이미 바뀌었지만, 내 뒤에 차들도 상황을 뒤에서 다 보고 있는지라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드디어 다시 우회전을 하기 직전에 상대가 운전석 쪽 창문을 내리고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남의 차를 이렇게 받아놓고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요?"
"네? 제가요? 제가 차를 박았다고요?" 그러더니 내차에 있는 긁힌 자국들을 본 듯이 놀라며
"이거 제가 그런 거예요?"
"네. 그래요. 그쪽이 그런 거니까 그 앞에서 우회전해서 주유소 조금 지나 공터에 차 좀 세우세요."
"네.. 네."
앞차를 따라가는 짧은 시간 동안 아니 어떻게 자기 차로 남의 차를 박는데 모를 수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괘씸하기도 하고, 모를 리가 없어 거짓말 일거야 이대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차 번호판을 열심히 외우고 있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린 운전자는 앳되어 보이는 여자운전자였다. 내리자마자 내차를 보고, 자기차를 보고 왔다 갔다 상태를 살피더니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떡하죠? 제가 초보라, 차 산지도 얼마 안 되고 운전도 서툴러서 사고 난 줄도 몰랐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어쩔 줄 모르는 모습에 나도 조금은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됐다.
"그게.. 아무리 서툴러도 어떻게 차가 부딪히는 걸 몰라요, 소리도 크게 났는데."
"제가 음악을 크게 틀어놔서 잘 안 들렸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초보인데 음악을 크게 틀고 운전을 하다니, 라떼는 말이야 초보때는 운전에 초집중하느라 옆사람과 대화도 못하고 라디오도 못 틀었다고.
"저...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이제는 본인도 많이 놀란 것 같아 보이니 오히려 나는 차분해졌다.
"이미 난 사고는 어쩔 수 없으니 사고처리나 해주세요. 보험사에 연락하시고 사고처리번호 제 번호로 좀 보내주세요."
"네? 그게... 어떻게 하는 건데요??"
하... 속으로 한숨을 쉬어본다. 그래, 자기 차가 남의 차 긁는 것도 모르는 초보인데, 사고접수 따위 알리가 없지 않은가.
"자동차보험에는 가입했죠? 그럼 보험사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사고접수한다고 하고 본인 확인하고 저 좀 바꿔주세요."
상대로부터 전화기를 받아 들고 사고경위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쪽은 정지한 상태였고 이쪽에서 본인 과실을 인정했으니 보나 마나 상대과실 100%였다. 상대 보험사에서도 그렇게 진행될 것 같다며 사고처리번호를 문자로 주겠다고 했다.
"이제 접수됐으니까 이 번호 들고 가서 제 차를 정비소에 맡겨서 수리할 거고, 그쪽도 정비소 가서 얘기하고 수리받으면 돼요. 경비는 그쪽 보험사에서 부담하게 될 거예요. 보험사에서 경과를 알려줄 거예요. "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해요. 제가 차 정말 이쁘게 고쳐드릴게요!"
내 차를 이쁘게 고쳐준다니... 본인이 고치는 것도 아닌데. 픽하고 웃음이 나버렸다. 안 그래도 나날이 감가상각비가 떨어져 가는 오래된 차를 이쁘게 고쳐준다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하.
"본인도 놀랐을 텐데 여기서 좀 진정하고 가요. 조심해서 운전하시고요."
"네네, 안녕히 가세요~"
뭐 나도 초보때는 차선 한번 바꾸려면 진땀부터 나고, 좌회전을 못해서 길을 돌아 돌아다니고, 옆에 화물차가 지나가면 저절로 브레이크를 밟고, 여긴 우회전을 해도 되나 안 되나 헤매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래도 본인이 잘못한 걸 알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해결하려 애쓰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졌다. 앞으로는 조심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끌고 정비소로 퇴근하는 길에 자꾸만 피식 웃음이 났다. 남이 보면 미친 여자처럼.
초보든 아니든 안전 운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