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연약한 나의 멘탈을 위하여

by 문주


처음으로 큰 차의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운전이 서투른 저에게 운전 지적을 했을 때 저는 그냥 웃으며 넘기지 못하는 사람인 걸 알았습니다. 또 제가 늘 다짐하던 것들을 지키지 못할 때 그걸 상기시켜 줄 때, 그것도 적절하게 웃으며 대하지 못했습니다. 아직 참으로 성숙하지 못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제 부족한 모습은 스스로를 자꾸 깎아내리는 계기가 됩니다. 어수룩한 나의 모습이 밉고 싫어집니다. 처음에는 운전 못하고, 다짐 못 지키는 내가 싫어졌다가 이후에는 그런 것으로 기분이 쉽게 나빠지는 내가 싫고,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방법으로 자꾸 먹는 탓에 살이 찌는 몸도 싫어집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싫어하는 모습이 참 못났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도 이런 내 모습을 싫어할까 무섭습니다. 그럼 더욱 도망가고 싶어지고 숨고 싶어 집니다. 연고 없는 곳에 혼자 숨어 들어가 아무도 나를 미워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종국에는 나를 미워하는 나를 버리고 싶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이럴 때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봅니다. 상대가 한 말이 뾰족하게 느껴지더라도 그 말들은 넘기자면 넘길 수 있는 말들이었습니다. 그 상황 자체를 곡해한 건 제 마음입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에 핸들을 부드럽게 꺾으라는 조언은 그럴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초보운전자에게 왜 새 차를 못쓰게 하는지 알겠다"는 말에 간접적으로 지적들은 것은 꽤 기억에 남습니다. 구직 중에 면접 본 회사에서 "작은 이익보다 멀리 큰 이익을 보라"는 사장님의 말도 기분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이 묘한 생채기를 남깁니다. 단어 하나에 예민해지고 뉘앙스 하나에 기분이 일히일비 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쉬이 한 말들이 유난히 오래 남는 시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그냥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인데 왜 이렇게 사서 아파하는 걸까요. 그런 말들에 상처받지 않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영역이에요. 어른이 되어간다는 건 이런 내용에 스스로를 타협하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이를 셈하는 방법은 변했지만 저는 아직도 예전 방식이 편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세어보면 스물아홉, 결코 어린 나이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받은 상처에 눈물이 핑 도는 것이 저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먼 것 같습니다.


그런데요 혼자 또 다시금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결국 미움받기 싫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기분입니다. 그렇게 미움받은 것도 아닌데 혹여나 내 부족함이 들켜 버림받을까 봐, 그러기 전에 내가 빨리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버림받았고 상처받았다 느껴졌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그때와 지금은 별개의 일이고 다른 사람들인데도 저는 이 상황이 반복될까 두려운 겁니다.


그럼에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은 방식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어떤 말로 상처가 되었을 때 혼자 속으로 미워하는 마음만 쌓아뒀던 예전과 다르게, 내가 어떨 때 기분이 나쁜지 이야기합니다. 혹여 그러다 싸움이 되어도 속으로 미워하는 마음이 쌓이는 것보다는 슬기롭게 해결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점점 더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사이에 있는 기분입니다.


결국 마음의 문제입니다. 내 마음을 돌아본 일도, 타인의 말을 받아들이는 일도 그걸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지나친 스스로에 대한 비난도요.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제 몫입니다. 누가 이해 해주고 말고의 영역이 아닙니다. 마냥 귀를 닫는 것은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고 모든 귀를 열어 그 이야기들이 마음에 통하게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상에 별거 아닌 일들과 별 일이 따로 있지 않고, 그 마음의 장벽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작은 일도 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느낀 하루입니다. 쉬이 상처받아도 괜찮다고 저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토닥 위로해주고 싶은 눈 내리는 주말입니다.



큰 차의 운전대를 처음 잡아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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