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나의 글들은 꽤 부정적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글로 남기면 좀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잘 안 읽게 된다. 그럼에도 부정적인 글들을 계속 쓴다. 쓸 때 느껴지는 감정이 마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한낱 감정은 사그라지고 글이 남는다. 그걸 타자가 되어 읽으면 비로소 그 감정이 감정뿐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마음이 많다.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그래.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그게 별개의 일이면서 별게 아니게 된다. 복합적인 마음이 그 부정성에 타당함을 부여한다. 결국 다 합리화의 과정인 것 같다. 난 원래부터 이게 마음에 안 들었어 라면서 말이지. 실은 처음에는 엄청 기뻤을 거다. 좋았을 거고. 근데 시간이 지나니 별게 없다는 걸 알고는 사실 마음에 안 들었다며 처음의 마음을 망각해 버린다.
최근에 본 <더 좋은 삶을 위한 철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누군가의 차 범퍼를 쳐서 사고를 냈는데 이 수리비가 만만치 않다. 크게 사고 낸 것 같지도 않은데... 최근에 큰 허리케인이 덮쳐 피해를 본 사람들도 이렇게나 많은데 크게 사고 같지 않은 이 상황에 돈을 써야 할까? 오히려 허리케인 피해자들을 위해 쓰고 말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흐름. 우습지만 이런 생각의 흐름은 쉽게 보인다. 특정 참사에 대한 명복을 쓴 게시글에 그것 말고 다른 사고들은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거나...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는 참 많은 별개의 사건을 하나의 마음으로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부정적으로 쓰인 당시의 글을 보면 내가 참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도 든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굴지는 못했을까? 실은 다 개별 사건들이니 이를 하나로 결부시켜 누구든 나쁘게 보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나. 내가 들은 그 질문의 의도가 그렇게 나빴을까 하는 거다. 이게 다 내 마음에서 온 것 같아서 그렇게 남겨진 글들이 이제 와서 불편해진다.
그럼에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인간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부끄러운 과거가 있기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만들어 주는 동력이 다방면으로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썼던 과거의 글.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의 행동과 마음가짐을 끊임없이 복기하는 과정에서 이것 또한 기만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진짜 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은 꽁꽁 싸매놓고 결국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중이다. 말 못 할 일들은 그냥 조용히 묻히기를 바란다. 그게 진짜 나다. 부정적인 표현으로 말 못 할 얘기들을 덮는 그런 글을 쓴다. 그래서 아주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이 글도 여전히 부정적인 사고와 그걸 포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 슬며시 머리를 드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애써 이렇게 생각하는 게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거다. 그니까 이런 방어기제는 당연한 거라고 합리화하고 싶은 거다. 그냥 그런 거다.
이렇게 써놓은 일기장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글을 썼던 그 당시 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뭘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그때 나라는 사람이 좀 안 됐기도 하고요. 그리고는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시로 떠오르는 부정적인 기억과 감정들을 모두 기억하게 된다면 훨씬 괴로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이걸 잊고 하루를 살아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