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소현 가곡 이수자 인터뷰
이번 무명의 반란 주인공은
전통음악의 한 분야인 가곡을 전승하고 있는
임소현 가곡 이수자입니다.
결혼 후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보통 새로운 시작을 주저하게 되는 나이인
40대 초반에 가곡을 만나
10년 이상 배움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인간문화재이신 한자이 대전무형문화재 가곡 보유자의 제자로,
전수자 중에 우수성을 인정받아
현재는 이수자로 활동 중입니다.
무명의 반란 이번 편을 들으시면,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지금도 늦지 않았어"
"여유를 가져도 돼"라고 다독여주는
따뜻한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불어,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겠다는
의지와 용기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http://www.podbbang.com/ch/13745?e=22268447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중심에 두고 살아가기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동양화 한 폭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가곡은 정가 중 가곡, 가사, 시조, 시창 중에 한 분야이다. 시조는 대중적인 노래라고 보시면 되고, 가곡은 전문가의 노래라고 생각하시면 된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피리, 대금, 장고 이런 여러 가지 악기 연주에 맞춰 5장 형식으로 부른다.
정간보라는 악보에 계이름이 한자로 쓰여있다. 처음에 이걸 접했을 때, 외국어를 배우는 듯한 막막함이 들었다. 그랬는데 악보 하나하나를 내가 알아가면서 소리를 낸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고, 잊혀진 음악을 배워가면서 익히고 전승할 수 있다는, 지켜갈 수 있다는 마음이 굉장히 좋았다. 처음부터 가곡을 배우는 게 아니라 호흡을 익히기 위해 제일 먼저 시조를 배운다. 시조를 배우던 때 선생님께서 선창을 먼저 딱 해주셨는데, 너무 멋있어서 내가 동양화 한 폭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 선계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에 푹 빠졌다.
가곡이 지금은 굉장히 느린 노래로 들리지만, 그 시대에는 굉장히 빠른 노래였다고 하더라. 당시 만대엽이라고 해서 굉장히 느린 음악이 유행이었는데, 가곡은 한자 '빠를 삭'자를 쓰는 삭대엽에 해당했다. 그 당시 어른들은 노래가 빨라지만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 가정도 중요하지만 나를 위해 살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전업주부였죠. 가곡을 처음 배울 땐 제가 이수자까지 될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다. 제가 2011년도에 선생님께 정식으로 레슨을 받고 2016년에 처음으로 개인발표회를 했는데, 이수시험식으로 해서 개인발표회를 했다. 기존에 선생님 제자 중에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개인발표회로 이수시험을 본 경우는. 선생님께서 좋게 봐주신 덕분이다.
결혼해서 초에는 내 가정을 위해서 내 아이들을 위해서 살려고 맞춰서 살았던 것 같다. 근데 아이들을 위해서 뭐가 도움이 될까 싶어서 독서치료나 여러 가지를 배운 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시도를 했을 때 옆에서 호응을 얻지 못했다. 나중에 또 IMF가 터졌을 때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할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해봤는데,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만 하다 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집에서 내 아이들을 돌보면서 일 할 수 있는 공부방을 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상황상 좌절이 됐다.
아이들을 위해 사는 인생도 뜻대로 안 되고, 가정을 위해서 돈을 벌어보려 해도 잘 안되더라.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게 제대로 되지 않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아보자고 마음먹었고, 그때 만난 게 노래였다.
▶본인이 좋아서 그 일을 하다 보면 그게 쌓여서 길이 된다.
노래를 배우기 전에는 스스로가 내 머릿속이 지옥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는데, 가곡을 하면서 머릿속이 굉장히 맑아졌다. 배우면서 변화를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 있더라. 너무 좋아서. 그동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그런 잡념들이 싹 사라졌던 것 같다.
시작하기에 절대적으로 빠른 나이, 늦은 나이도 없는 것 같다. 본인이 좋아하면 그때가 시작인 것 같다. 중요한 건 그걸 끝까지 하느냐다. 선생님도 제자를 받을 때 나이나 실력보다 그 사람이 끝까지 할 사람인가 아닌가를 더 중요하게 보시는 것 같다.
또한 인생은 정해진 게 아닌 것 같다. "너는 태어났으니까 이 길로 살아가라"라고 정해진 건 없는 것 같다. 본인이 좋아서 그 일을 하다 보면 그게 쌓여서 내 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난 원래 노래를 못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어려서 막내 오빠가 기타를 치고, 셋째 언니가 노래를 부를 때 저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는데 너도 한번 해보라고 해서 노래를 했다가 못한다고 핀잔만 듣고 상처를 받았었다. 그때 나는 노래를 못한다고 인식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전통음악을 하면서 노래를 잘한다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실제로 해보니까 쉬운 노래는 아니고 어려운 노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나하나 기술 익히듯이, 하나하나 익혀간다는 뿌듯함. 성취감이 있다.
▶인기 분야는 아니지만 배우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어느 날 언니 친구분이 듣고 본인은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 이건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저는 가곡을 배우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분야라고 얘길 하니까, 그분은 오히려 틈새시장을 잘 찾았다고 하시더라. 가곡은 제가 배우면서도 느낀 건 대중성 있는 음악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제가 즐거운 건 배우는 과정이 좋은 것 같다. 선생님 앞에서 배울 때 선생님이 노래를 해주실 때 직접 듣는 음악이 너무 좋다. 마이크를 통해서 나오는 그 소리보다 현장에서 생음악으로 들을 때 그 소리가 더 매력이 있고 좋았던 것 같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듯 우리 문화의 소중함도 알아주시길.
예전에 해외여행을 나갔었는데, 저녁에 아줌마들끼리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가 이런 노래를 한다고 소개하기 위해 작은 소리로 여창가곡 버들은을 불렀다. 옆에 있는 외국인 손님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작은 소리로 했는데, 그들이 박수를 쳐주더라. 가곡은 긴 호흡의 노래고 가만히 앉아서 집중해서 부르는 노래이다 보니까 외국에 가서 공연을 할 경우 호응이 굉장히 좋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모르는 게 안타깝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많이 알렸으면 하는 꿈이 생겼다. 나중에 요가처럼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고, 교과과정에 들어가면 좋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면 일자리도 창출되고 소중한 문화도 계승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제가 전수관에서 선생님께 가곡을 배우고 있는데, 이렇게 하는 곳이 많지 않다고 하더라. 그러다 보니까 배우는 분들도 연세가 드신 분들이고, 일반 서양 가곡인 줄 알고 왔다가 돌아가는 분들도 많고, 우리들한테도 생소하기 때문에 생소함을 없애기 위한 기회가 생겨야 할 것 같다. 서양 음악을 접하다 보니까 서양 것이 더 좋아 보이고 우리 것은 곁에 있어도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듯이 우리 문화도 소중함을 느끼려면 어려서부터 접해야 할 것 같다.
결혼을 하고나선 자녀를 위한 삶,
가정을 위한 삶을 사느라
자기를 잃기가 쉬운데요.
자기 꿈과 바람을 가족에게 투영하고 기대하고 헌신한 결과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실망하고 상처받는 경우가 적지 않죠.
물론 삶에 있어 소중한 사람이긴 하겠지만
남을 위해 사는 것,
과연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알고 보면 본인이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는 것 같습니다.
혹시 "지금 새로운 걸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작은 다소 늦었더라도 과정을 즐기며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면,
여러분만의 길이 만들어질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