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감정은 제때 표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필요이상의 감정 낭비로 하루를 꽉 채우게 된다. 상대의 차가운 시선, 날이 선 말투,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 불쾌함이 가시처럼 바짝 돋아나 내 마음을 콕콕 찌른다. 애써 고상한 척, 괜찮은 척하며 상대에게 언짢다고 말하지 못하다 보니 내 마음만 상한다. 밖으로 자라야 할 발톱이 살을 파고드는 것처럼 콕콕콕, 욱신거린다.
이를테면 택시를 탔는데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고 해괴한 말을 하는 기사님을 만났다든지, 친구에게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하니 우리 사이에 그 정도 돈도 그냥 못 주냐며 되레 공격을 당했다든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막말하는 손님에게도 웃으며 친절하게 응대해야 한다든지, 면접을 보러 갔는데 대놓고 외모나 나이 지적을 당했다든지. 이런 상황에서 난 정작 상대에겐 불쾌함을 표출하지 못하고, 그 후에도 지워지지 않는 언짢던 상황을 혼자 떠올리며 시간을 쓰고 감정을 쓴다. 더 화가 나는 건 상대는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루를 멀쩡히 보낼 거라는 사실이다.
나무의 이름은 가시주엽나무. 이 나무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가시를 바짝 세운다. 가시덤불로 칭칭 감은 것처럼 나무 기둥을 촘촘히 감싸고 있는 가시는 손대기 겁날 만큼 위협적이다. 그런데 고개를 살짝만 올려 위쪽을 보면 뾰족한 가시는 온데간데없고, 연둣빛 잎이 무성하게 돋아나 있다. 분명 하나의 나무인데 위아래를 보면 각각 다른 나무라고 생각이 들 정도.
설명을 읽어보니, 가시주엽나무의 원산지는 이란으로, 척박한 사막에서 어렵게 싹을 틔워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막의 메마른 땅도 문제지만 낙타도 나무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다. 낙타가 잎사귀와 여린 가지를 모두 먹어 치우면 나무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가시주엽나무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 딱 낙타의 키 높이까지만 몸에 가시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그 위로는 본연의 푸른 잎을 돋아 내며 자신을 지킨다. 딱 필요한 만큼의 방어 수단을 가지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쓸데없이 내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내 평안한 삶을 남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그러고 나서 상황이 종결되면 곧바로 가시를 훌훌 털어 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매끈해졌으면 좋겠다.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은 척하지 말고, 적당히 필요한 만큼의 방어 수단으로 나를 방어하며 살고 싶다.
나처럼 남에게 뾰족하지 못해 고민인 사람도 있겠지만, 자기를 지키기 위해 누구에게나 늘 뾰족하게 구는 사람도 있다. 상처 주는 말로, 말투로, 눈빛으로, 행동으로, 까칠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람. 그런 이들 중에는 원래 표현이 거친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상처받고 싶지 않아 불안함과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가시를 세운 경우도 많다. 그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면서까지 자신을 지키려 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이기적이지 싶다. 그런 사람을 상상하면, 자기의 파릇파릇한 잎은 하나도 지키지 못한 채 온몸이 뾰족뾰족한 가시로만 뒤덮인 나무가 떠오른다.
가시주엽나무가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딱 그만큼의 방어 수단인 가시를 만들어 낸 것처럼. 뭐든 적당한 게 제일 어렵지만, 그래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일단 내 솔직한 감정은 숨긴 채 상대의 비위를 맞춰 주는 비굴함부터 버리자. 그것만으로도 자책감과 쓸데없는 감정 낭비는 훨씬 줄어든다. 그러다 보면 딱 그만큼의 적당함을 찾는 때가 오지 않을까. 언젠가는.
[신간 에세이] <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출간 기념 연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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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를 줄이는 방법> 3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다를 때
11/14(수) 오전에 연재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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