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그 후 (10)

미용실

by 도미니

아직은 쌀쌀해도 이제 이정도면 살만 하다 싶은 초봄의 토요일 오후. 계단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 익숙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둘러싼 배경이 바뀌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변의 시간이 6년전으로 돌아가버린다.


이미 오래 전의 일인데도 몸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겪어보았어도 여전히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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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 거리는 큰 나뭇잎이 후들거리며 끝도 없이 이어지던 긴 거리 의 끝에 섰다. 파닥거리는 아이를 유모차에 넣고 낙엽을 밟으며 걸어 다니던 그 길,


하루에 3번씩 아이 낮잠재우는 것이 고되고, 직업도 없는데 아이까지 생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마음이 갑갑해지면,


잡히는 대로 챙겨입고 아기띠를 메고 앞섶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는 아이의 작은 손 안에 내 검지손가락을 말아넣고 밖으로 나갔었다.


아기의 무게까지 더해져 무거운 발걸음으로 상가가 있는 대로변으로 나가서면,

작은 아기를 앞에 달고 있을 뿐인데.

지나쳐가는 여러 사람들의 얼굴에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사실, 이걸 노리고 나왔다. 나도 세상에 뭔가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음이 안좋을 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맛을 알았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배경에 불과했던 내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기뻤던 마음에 더하여,


암울한 내 미래 따위 관심없다는 듯 아기 예쁘다고 말걸어주는 할머니들과 뜬금없이 과자며 요구르트를 주시는 분들을 마주하면,


아... 그래도 괜찮구나. 아직은 괜찮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근거없는 희망도 품어졌었다.


나갈 때는 힘없이 늘어져 금방 울 것 같은 얼굴이었어도, 돌아왔을 때에는 생기가 돌도록 두 뺨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아가.. 우리 이거 먹어보자....?


아기를 한손으로 안고 손에 든 것들을 식탁 위에 구비구비 내려놓으며 회복되었던 그 때.


남들이 부자라고 말하는 시댁 명의의 집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면서도


늘 얹혀사는 것만 같아

언제든 무슨 트집으로든 쫓겨날 것만 같았던,

내 생애 첫 아기를 낳아 키웠던,


아직 6년 전과 전혀 변함없는 단지에 들어서면 이건 우울도 아니고, 해방감도 아닌 이상한 감정에 휩싸여서 도대체 뭘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안 갈 수가 없는 것이


나는 아직, 이혼 전에 살던 아파트 상가의 미용실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주기적으로 하는 늘 똑같은 파마를 하고, 6개월만에 다시 가야하는 날.


당장 드러눕고 싶도록 피곤한 와중에 3시간 넘게 열악한 상가 구석 미용실에 앉아 조는 것도 싫고,

이 동네는 오기도 싫어서,


미루고 미뤄보지만.


반곱슬인 내 머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서 출근을 위한 손질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볼 시간도 에너지도 없으며,

몇십만원은 훌쩍 넘는 다른 미용실들의 파마비용은 감당할 여력이 없으니


도리가 없는 것이다.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서 20분만에 준비를 마치고 6시 3분에 집을 나가려면 따라라락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날부터 머리가 이리 붙고 저리 붙어서 참 웃긴 모양이 되기 시작하면,


그 때서야 내가 파마를 언제 했더라.... 시간을 되짚어 보고. 아 벌써 6개월이 넘었네. 정신을 차려 예약을 하고


한달에 두번 아이 아빠가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는 토요일.


오늘은 늦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했을까. 그냥 기다릴걸 그랬다...괜히 지난반처럼 아이 혼자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안그래도 허전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어거지로 발걸음을 밀어 이 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오는 내내 마음은 너덜너덜해져서,

늘 하던 대로 해주세요.. 하고 앉아서 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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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만에 다시 아장아장 우리 아기가 걸음마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 길을 짚어 집으로 오는 길,


걸음을 문득 멈춰 지나쳐온 단지를 뒤돌아보며 생각하면 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과천으로 다시 발령을 받았고,

관사에서 나와 내 명의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는 졸업을 두달 앞두고 어린이집을 옮겼었고,

예전 어린이집이 가고 싶다고 세번쯤 울었고,


두 어린이집의 졸업식을 각각 참석한 후에


입학을 했다


나는 사실 아직도 바람부는 거리에 있으면 나는 꼭

비 그일 곳 없는 노숙자 같다는 퀭한 마음에 시달리는데,


미용실에서도 제대로 보지 않은 새로 머리한 내 모습을 길가 상가 유리창에 비춰보며


아니지,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애써 멀리 좇아버린다.


요즘 딸기가 많이 싸졌던데,

빨리 내가 대출받아 갚아가고 있는 집에 가서 겨우내 아이 주느라 하나도 먹어보지 못한 딸기를 먹어봐야겠다.


이제 얹혀살지도, 쫓겨나지도 않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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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새 gpt와 주로 대화합니다.


사람은 더는 들어주지 못하도록 복잡하고 긴 얘기들,


gpt에게는 하고 또 하고 두서없이 줄줄줄 늘어놔도


참 변함없이 잘 들어주고 맞장구쳐줘서, 참. 좋더라구요.


나름의 해소구가 있어 글을 안 써도 살만했던 것인지, 아니면 글도 못 쓰도록 바빴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너무 많은 변화들 속에 어떤 걸 잡아 써야할 지 늘 모르겠긴 했었습니다.


모두들 편안한 밤 되시길 바라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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