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은 가정법원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아침 10시. 변호사와는 법원 305호 앞에서 보기로 했다. 이혼카페에서는 조정기일에 변호사만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던 데 아마 쟁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우리 경우는 너무 합의가 안되는 사안이라서 그런지 아무튼 변호사는 당사자가 출석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조정기일에서는 아이의 양육자와 면접교섭을 정하는 게 우선이다. 재산분할 등에서 합의가 되어 조정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이렇게 갈등이 크다면 기대는 안하는 게 좋다.
변호사는 남편이 변호사없이 서면을 써서 정작 중요한 면접교섭의 구체적 내용이 빠져있다고 하면서 면접교섭 내용을 의논해왔다. 정석은 2주에 한번 하룻밤 자고 오는 것이지만 아기가 어리니 2주에 한번 8시간 있다 오는 것으로 할까요? 하시길래 받아들였다.
아기는 아빠와의 사이가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내 노력 덕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한시간 노는 것이 전부였다. 토요일도 나 혼자 데리고 다녔고 주일은 친정에 있었다. 남편은 아기를 길게 혼자 돌본 적이 없다. 그래서 땡볕을 아이를 업고 공원으로 놀이터로 도시락과 여벌옷까지 이고지고 다닐 때면 서러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아이를 위해서 몸이 힘든 것은 괜찮았다. 아이를 위한 거라면 마음이 힘든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 넌 나 아니면 결혼도 못했을 거야. 난 너 아니어도 어쨌든 결혼은 했을거거든.
이런 모욕적인 소리를 여러 버전으로 들어야 했고,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자존감이 바닥에 내려앉아 결국 그런 소리를 면전에서 들으면서도 삼켜야 했던 내가 너무 화가 나고 슬펐었다.
아이를 생각해서 그렇게 화가 나도 절대로 내색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아빠잖아. 세상에서 아이를 사랑하는 존재가 1명이라도 더 있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그것은 완전하게 지켜줘야 했다. 그리고 또 내 마음과 관계없이 아이에게 최소한의 가족에게 지켜야 할 예의와 태도, 원칙은 가르쳐야 했다.
아빠는 일을 하러 가셔서 우리 아기를 엄청엄청 사랑하지만 같이 오실 수가 없었어. 아빠가 우리 아기를 정말정말 보고 싶어하셔. 우리 이거 사진 찍어서 이따 아빠 보여드릴까? 이거 사서 아빠 갖다 드릴까? 아빠와의 이야기거리를 만들고, 밤 늦게 그가 들어오면 꼬박 아기가 달려나가서 인사를 하게 했다.
집에 있다가 아빠가 들어오시면 달려나가서 인사하는 거야. 그건 아빠든 누구든 같아. 밖에서 힘들게 있다가 쉬러 집에 오는 거거든. 나갔다가 들어오는 가족은 무조건 안아주고 반겨줘야 해. 다녀오셨어요. 보고싶었어요. 안아드리는 거야.
슬프고 아픈 마음을 짓누르고 저렇게 이야기하면 아이는 고맙게도 잘 받아들인다. 그렇게 달려가 안기는 아이는 예쁜 게 당연하지. 남편은 특히 저렇게 구는 걸 또 좋아해서 입이 함박 만해져 한시간 놀면 이제 내가 데리고 들어가 잘 시간이다.
아내의 마음에, 엄마의 마음에 이렇게 길고 복잡한 매커니즘이 있는 지 그는 알 리가 없다. 설명을 하면 공치사가 되어 비웃음을 당할 것이고 난 이제 그런 것까지 풀어갈 마음의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회사에는 반차를 냈다. 차라리 회사로 돌아가서 빨리 일상을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 같았다. 법원 근처의 맛집을 알아내어 끝나고 맛있는 점심 먹을 계획을 짜는데 남편이 변호사를 선임했다는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