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18)

조정위원

by 도미니


서울가정법원은 양재역에 있다. 난 워낙 강남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서 전철을 타고 한참을 간다. 가서 내려서도 여전히 낯설다. 기둥마다 붙어있는 변호사들의 광고가 남일 같지가 않다. 그치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그리고 내 변호사가 성실하지 않았다면, 나도 저런 광고문구에 엄청 흔들렸을 것이다.

우황청심원을 먹고 온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아서 먹지 않고 가보기로 했다. 로비로 들어가 검색대에 가방을 통과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섰다. 조정실은 305호 라고 했나..... 중간에 있는 화장실에 들러서 거울을 보며 몇번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호흡을 한번하고 걱정을 밀어낸다.


또 심호흡을 한번 하고 눈을 떠서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또 심호흡을 한번하고, 나를 지켜보고 계실 그에게 이 모든 상황을 맡긴다.


'주여, 제 입을 관장하시고, 모든 상황을 만져주세요. 제가 당신밖에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긴급한 간구는 곧 평안을 불러왔다. 평안해질 수 없더라도 평안한 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변호사님이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어리고 화려한 변호사들 틈에서 수수하지만 강단있어 보이는 내 변호사님은 굉장히 믿음이 간다. 그께서 나에게 좋은 사람을 보내주셨으리라. 모두 경계하되, 그녀만은 철저히 믿어보자. 낡았지만 깨끗한 옷차림과 두꺼운 서류 뭉치.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톱. 꾸미지 않은 그녀 모습이 한층 더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변호사님을 다시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소제기 직전 상담차 처음 보고 오늘 5달만에 두번째 만남이지만 그 동안 공유한 사건이 있어 그리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들어가면 조정위원은 몇명이 있나요.? 여기서 뭘 하나요? 간단한 것을 물어보고 있는데 남편이 나타났다.

신경 안쓰는 척 했지만, 온 귀를 그 쪽으로 집중했다. 형 화장실 갔다올게. 하면서 그 쪽의 변호사가 가는 걸 보면, 지레 짐작이 가는, 나도 아는 그의 지인을 통해 변호사를 선임했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그리 실력 좋은 사람은 아니겠다. 한편으로는 안도가 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도 없다. 각자 다른 쪽의 의자에 앉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우리를 불러서 다툼을 중재해주길 바라는 이 상황이. 사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최선이었다. 서글프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다만 울지 말자. 억울하고 화가 나도 울지 말자. 만 계속 중얼거렸다.

조정위원은 한 명이다. 교장선생님이나 약사 등등 안정적인 직업을 노래 가졌던 사람이 은퇴후 한다고 했다. 얼마나 사건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올지, 얼마나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인지가 관건 이지만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이름을 부른다. 그 사람이 조정위원이다. 따로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권위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이 위원이지 그냥 어떻게든 법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취하를 유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름을 불러 들어갔다. 실로 오랜만에 그와 마주앉았다. 언뜻 스킵하며 본 차림새만으로도 충분히 초라하다. 제일 좋아 보이는 옷을 골라입고 왔겠지만, 아직은 서류 상 아내로서 내 눈에는 다 보였다. 흙빛이 되어있는 안색과 그럼에도 거들먹 거려야 해서 장착한 작위적인 행동들, 뭔가 털을 잔뜩 세우면 있어보일 줄 알고 있으나... 언제나 그랬듯 사람의 품위는 억지로 내보일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넌 더 성실히 살고, 아내를 성실히 대했어야해. 그 불성실한 인생에 대한 태도가 신발 끝까지 묻어나 있다. 고 생각했다.


......

조정을 위해서 양쪽은 번갈아 다섯번이 넘게 들락거렸다. 끝나기까지 두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결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조정위원이 제시한 타협안에 응하지 않은 것이다. 이게 나한테 득인지 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씩 웃어주기까지 했다. 잘했다.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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