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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Feb 17. 2024

이혼일기(52)

롯데월드

크리스마스 연휴에는  마음이 무겁고, 몸도 아팠다.  


가래가 끓는 감기는 두달이 되어가도록 나을 줄을 몰랐다. 뭐가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러싼 모든 것이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나에게 최선임도 잘 알고 있다. 불평은 하지 않았어도 힘이 들었고 앓느라 회사도 이틀이나 빠지기도 했다.


컨디션도 최악이니, 마침 남은 연가를 쓸 때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아빠집에 가서 하는 양육환경조사가 남아 있었다.


아이 아빠는 그날 아침 내가 있는 곳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같은 서울이라도 편도 한시간이 꼬박 걸린다. 그나마 차가 안 막힐 때 이야기이고, 차가 막히면 두시간은 우습다. 그리고 새벽을 제외하고는 늘 체증이 심한 거리였다.


 연가를 내서 몸도 마음도 가벼운 아침이어야 했는데, 아이와 좀 더 뒹굴지 못하고 나갈 채비를 시켰다. 어린이집도 안가는 데 엄마와 늦잠도 못자게 된 아이는 가기 싫은데... 하면서도 따라 나섰고, 아파트 입구에서 아빠를 만나 안겨졌다.


 멀미도 할텐데 차로 오가는 길이 걱정이다. 왕복 4시간을 차에 갇혀 있다니, 이 황금같은 엄마 연가의 날 이게 왠일인가. 억울하고 화나지만 현실은 이렇게 힘이 세서 나는 굴복하고 늘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산타할아버지가 다시 조사관 아저씨를 보내서 선물을 받았는 지 물어보실 거야. 그러니까 엔칸토 레고 고맙습니다. 하면 돼 알겠지?


 말귀를 잘 알아듣는 편이니 시킨대로 잘 할테지만 너를 보내야하고, 또 굳이 안해도 되는 일을 겪게 해야 하는 엄마의 속상함은 모르지 아가. 평생 모르게 할게. 영영 모르고 마냥 즐겁기만 했으면 좋겠다.


이따 조사관 아저씨 만나고 오면 뭐 하고 싶어?


- 응... 롯데월드?


아... 롯데월드....... 롯데월드..... 롯데월드는 지금 사는 곳에서 멀지 않아서 추석연휴 때 잠깐 가본 적이 있었다. 도깨비같이 화장한 교복입은 친구들을 보는 것이 무척 과로웠고, 암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난 조금만 피곤하면 이석증 전조증상으로 머리가 무겁게 깨지도록 아프고 그러면 또 며칠은 고생을 해야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그래! 엄마랑 거기 가자? 이따 아빠가 거기로 데려다 주실거야 그럼 거기서 보자!  


 몸도 마음도 어렵사리 아이를 보내고 아주 오랜만에 거실 소파에 누웠다. 남향인 이 집은 해가 참 잘 든다. 겨울의 큰해가 베란다의 통창을 통해 들어오면 난방을 하지 않아도 집 전체가 따뜻해진다.


 내 인생은, 이제 40 중반으로 접어드는 나는 어느 방향을 바라보아야 따뜻해질까. 어디를 바라보면 큰 어려움없이 밝고 따뜻한 해가, 들어오는 길목 어귀를 채우고, 내 마음 가득히 들어올 수 있을까.


 아른아른 솔솔 잠이 드는 와중에도 마음이 아렸다. 우리 아기는 지금 잘 가고 있을까. 차에서 잠이 들었으려나.. 이따 롯데월드에 가면 사람이 많을까... 생각이 줄줄 이어졌다. 괴롭고 아플 땐 주먹을 쥐어 가슴 위에 올려놓는다. 반드시 지나갈 거라고, 그리고 좋은 때가 올 거라고. 주님이 나를 지켜보시고, 아주 좋은 것을 예비해두고 계신다고... 잠결에도 발휘해 보는 의지가 더없이 소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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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롯데월드 앞 차대기 좋은 장소까지 찍어주었건만 그는 또 30분이나 지나서 나타났다. 그리고 나를 지나쳐 가버렸다.


약속이 4시이니 행여나 문제가 생길까, 나는 3시반부터 추위에 떨며 기다렸고, 그냥 지나쳐가는 차를 보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저건 또 뭐냐....? 생각만 했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는다.


상황은 뻔하다. 그는 멀티가 안된다. 그래서 운전할 때 네비도 잘 못 본다. 옆에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잘 찾는데 어머니나 이모님은 그런 걸 못하시고, 또 어머님께 나를 보이면 역정을 살테니 안그러려고 눈치를 보다 저렇게 되었을 것이다.


4시부터 하는 티켓을 사놓았는데! 내일 출근해야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 놀아야 조금이라도 일찍 가서 아이를 재울텐데. 왜왜. 전화도 받지 않고. 정말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어디가 있는 거야...  


조급한 마음을 누르며 마침내 연결된 통화해서 그는 지금 가고 있다고 짜증을 낸다. 이것도 예상된 반응이다. 진지하게 미안하다고는 하는 적이 없다. 미안하면 더 당당하게 굴었다.


 왜. 왜. 나 이제 헤어지고 있는데 이 짜증을 내가 받아야하지.


 온통 기분이 상하고, 계획이 어그러져 가니 마음이 상하고. 정말 아무데라도 화를 내고 싶은데 아이를 안고 그가 나타났다. 이미 5시가 다되었다.


 어금니를 꽉 깨문다.


안돼. 오늘은 우리 아기의 날이야. 오늘 제일 고생한 건 우리 아기야. 화내지 말자. 화내지 말고 우리 아기 제일 즐거운 날로 만들어 줘야지.


 아가!!!! 잘 갔다왔어? 아저씨도 잘 만났지? 아빠한테 안녕하고 우리 빨리 롯데월드 들어가자!! 


 스텝을 밟아 춤을 추며 아이와 손을 잡고 롯데월드에 들어가는 길, 얼떨결에 아이를 넘긴 그는 가지 않고 우리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나는 마음에 피가 줄줄 흐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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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아도 이기지 못하는 작은 모성을 가졌구나 생각했어요. 아이가 즐거울 생각을 해도, 그것만으로 화가 잘 삭여지지 않더라구요. 내내 아이에게 연기를 하며 두시간 정도 지나니까 아이의 웃음이 쌓여 그나마 마음이 풀리고,


퍼레이드도 보고 놀이기구도 줄서서 탔어요.


사실 그 고생은, 말해 무엇합니까 ㅋㅋㅋ 정말 힘들었어요. 안고 보여줘야 하는 것들도 많고, 떠메고 뛰어서 줄도 서야 하고 혼자 하기에 벅찬 것들이 참 많았습니다.


 아빠랑 온 집들이 너무 부럽더라구요.


그래도 또 이렇게 날들이 지나갑니다.


아무일 없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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