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51)

조사관아저씨

by 도미니

연가가 하루 남았다. 원래 그 하루는 우리집으로 양육환경조사를 올 때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집으로 조사를 갈 때도 아이를 보내고 받아오고 하려면 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이걸 어쩌나.. 생각을 하다가, 우리집으로 올 때에는 1시간 남은 자투리 연가를 외출로 쓰고.. 그 집에 보낼 때 남은 하루 연가를 쓰고 아이가 간동안 몇시간 쉬고, 다녀온 아이와 함께 하고 싶던 것을 해야지. 마음 먹었다.

양육환경조사를 어떻게 설명하나 사실 생각도 따로 못했었는데, 아이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산타할아버지가 조사관아저씨를 보내신다는 말이 나왔다.

우리 아기가 선물을 받을만 한가 아닌가를 보려고 산타할아버지 조사관아저씨가 오실 거야. 산타할아버지는 다 알고 계시니까 그냥 엄마랑 있는 거 보여드리면 돼. 엄마랑 잘해보자?!

아기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주님은, 이토록 섬세하게 날 돌보신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성전의 내 자리, 교회안의 내 마음의 자리를 지키며. 목자가 이끄시는 대로 생각없이 따라가는 것이다. 그러면 잔가지는 이렇게 아무것도 아니게 해결된다.

가정법원의 가사조사관제도는 판사들의 업무 부담을 덜고, 가사소송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내가 봐도 단순한 재산관계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나 감정상태가 중요한 소송인만큼, 저 정도의 보조인들이 필요하다 싶었다.

대부분 심리학이나 교육학 전공자들이 공무원 대우를 받게 되므로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로도도 상당해 보여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와서 서랍도 뒤져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는데.. 뭐 사실 뒤져봤자 아쉬울 것도 없고 별다른 준비는 하지 않기로 했다. 준비할 여력도 없다.

매일매일 출근해서 업무 파악하는 데도 벅차다.


매일매일 눈물을 참고 지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오늘 1시간 정도 외출이 가능한 지 여쭤보니 흔쾌히 괜찮다고 해주셨다. 직장어린이집은 참 친절해서, 아이가 아파도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대부분의 편의는 기꺼이 봐주셨다. 이렇게 감사할 일이 투성이이다. 조금만 고개를 들고 정신을 차려보면 이 와중에도 날 돕는 상황들이 참 많았다.

그러니, 그러니. 속상해하지 말자. 내가, 처량하다 생각하지 말자. 너무너무 좋은 환경이야. 차고 넘친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조사관이 근처 전철역에 내렸다는 문자를 받고, 뛰어나가 아이를 받아 안았다. 이제 막 낮잠에서 깨어난 아기는 선물이고 뭐고 당장 엄마 목덜미에 얼굴을 묻느라 바쁘다. 한달음에 관사로 달려가 아이를 내려놓고 어수선한 집정리를 하는데, 조사관이 도착했다.

이 방 저 방 사진을 찍고, 아이와 함께 있는 나도 찍는다. 인위적인 웃음같은 것 억지로 연출할 생각은 없었는데, 낮잠에서 막 깨어난 50개월이 낯선 남자를 보았으니 얼마나 황당할까... 아이 얼굴이 풀리질 않는다.

조사관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는 00이에요. 산타할아버지는 감기 안걸리셨나요?

잘 자리에서 장난처럼 연습한 인사도 나오질 않고 내 목덜미만 끌어안는 아이가.

너무너무 불쌍하고 속상했다. 이혼은 나의 문제고, 아이에게 이런 짐은 손톱만큼도 지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은 이런 상황이 왕왕 발생하고 있었다.

아이와 단둘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조사관의 요청에,

산타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 받고 싶은 지 지금 말 안하면 기회가 없어.. 지금 꼭 말씀 드려야해. 엄마는 여기 있을테니까 안심하고 잠깐만 들어가서 말씀 드려. 알겠지?

주춤 주춤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보는 우리 아가. 엄마가 정말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근데.. 앞으로 살면서 이럴 일이 정말 많아. 네 잘못이 아니라도 감당해야하는 일이 정말 많을 거야. 그 때마다 엄마가 지금의 미안함 잊지 않고 옆에 있어줄게. 옆에서 우리 아기 편들어줄게.

잘한다. 정말 멋지다. 우리 아가.

----

들어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 지, 저는 몰라요. 귀를 방문에 대면 들릴 것 같았지만.. 그냥 안들었어요. 귀를 대고 듣는 게, 아이 턱을 헤쳐 꼬매는 수술장면을 보는 것 보다 더 어렵더라구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히.. 웃으며 나왔고, 조사관은 00이가 엔칸토 레고가 갖고 싶대요~ 하고 인사하고 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두 다 지난 일이 되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혼일기(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