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50)

민사예납금

by 도미니

몇번 이름을 불러보다 들어온 조사관은 전화기를 확인 한 후 남편이 조금 늦는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정말 대단해. 이런 작은 태도들이 하나하나 반영되었으면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다. 나와 먼저 몇가지를 확인하고 십오분 후 언제나처럼 헉헉거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둘이 나란히 앉아 조사관의 질문에 번갈아 대답을 한다.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독기도 오르고

처량맞기도 하고


별의별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있는데, 조사관이 한마디 한다.


남편분 이쪽으로 좀더 오시고, 아내분 좀더 안쪽으로 오세요. 지금 얼굴이 안보이게 책상밖으로 나가있어서 무슨 말인 지 잘 안들려요.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려고 그 와중에도 용을 쓰고 있었다. 어느새 내 의자는 조사관의 책상을 벗어나 있어서 모니터에 가려 내 얼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단다.


꿈에서도 보기 싫을 만큼 남편이 싫었다. 존경할 만한 모습이 없음에도, 나만 예뻐해주고 인정해준다면 된다고 생각하고 선택했었는데, 그의 자격지심은 아내를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지금 생각하면 학벌 컴플렉스였던 것 같다. 무슨 토픽마다 이슈마다 본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고, 시댁식구를 제외한 다른 사람의 칭찬을 해도 흥분을 했다.


그렇게 말끝마다, 자기가 나보다 가방끈도 길고 재산도 많아서 더 잘났다고 유세를 떨던 사람이 이제는 본인은 전혀 능력이 없고, 9급 공무원 월급이 200만원이라 양육비는 50만원밖에 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간자체에 대한 환멸로 이어진다.


그래도 또 양육권은 본인이 가진댄다.


그러면, 양육환경조사라는 것을 또 해야한다.

어느 쪽의 환경이 아이에게 더 적합한지, 조사관이 실사를 나오는 것이다.


엄마집에서 1번, 아빠 집에서 1번.


우리 집에서 하는 거야 아기는 일상 생활을 하다가 그냥 손님 한번 맞으면 되는 일이지만 아빠 집에서 하려면 또 막히면 2시간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차를 타고 가서, 얘는 그 집에 맥락없이 앉아 있다가 또 2시간 넘는 거리를 차를 타고 와야 한다. 아니 정말, 이게 무슨 짓이지. 싶은 그 일정을 머리를 짜내어 잡았다.


내가 지금 앉아서 뭘 하고 있나.. 이게 뭔가 여기서 무슨 얘기를 해야하나, 뭘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한심하고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은 지난 번 조사에서 아직 아내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남아있다고 했어요. 아내는 지금 어떤가요.


.... 저 말에 엄청난 분노를 표현하며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때는 그저 빨리 단 1초라도 빨리 쟤와 떨어져 나오고 싶었다.


그 뻔뻔함을 보고 있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고, 그런 사람과 맞닿아 있었다는 것이 마치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 같아서 수치스러웠다. 그래서 화도 나지 않았다.


- 아, 네. 제가 열심히 했으니까요. 그럴만해요. 근데 전 절대 아닙니다.


아내분은 다시 생각할 생각이 없는 거에요?


- 네. 상담도 뭐도 전혀 필요 없습니다. 저는 달라지지 않아요.


남편의 말도 안되는, 있어보이려는, 변명과 주장들이 이어지고. 앞뒤가 너무 안맞아 반박이 가능한 말들인데, 근데, 그것들을 반박할 의지와 기운이 없었다. 헤어지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싫다는데, 굳이 저 말에 왜 대꾸를 해야하나 싶었다.


마지막으로 판사님께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뭐든 지 해보세요.


이때, 또 조목 조목 남편의 말을 반박하고 그의 행태를 지적했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또 그러지 못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기운없는 말들만 이어졌다.


- 조사관님, 저는 이제 빨리 헤어지고 싶어요. 이미 따로 살은 지도 오래고, 이 생활에 저도 아이도 익숙해졌어요. 전 저 사람을 감당할 수 없어요. 수없이 저는 본인의 엄마 없음 아무것도 아니고.. 본인은 저 아니어도 결혼했을 거라는 모독을 들어왔어요. 저 아무것도 아닌 것 잘 알아요. 시험에 붙었다고 제가 달라지는 건 없는데 , 전 저런 사람을 감당할 자신이 더는 없습니다. 제 그릇이 안되요.


아니 아내분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해요? 직장에서 엄청 대우 받고 있잖아요. 본인도 알고 있잖어요. 다들 사무관님 사무관님 하잖아요?

- 네 맞아요. 근데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해요? 그거 직장에서만 그러는 거에요. 직장 아니면 제가 내세울 게 뭐가 있어요? 나이 먹고 고시붙은 건 하나도 대단하지 않아요. 그냥 다행스러울 뿐이에요. 20대에 9급으로 들어온거나 뭐가 다른 가요. 저는 겨우 1호봉이라 월급도 적고, 재산도 아무것도 없어요. 도대체 뭐가 잘났다고 하시는 거에요?



헛되고... 헛되도다. 내가 해 아래에서 보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솔로몬의 말처럼, 모든 것이 헛되다. 40이 넘어보니, 나름의 갖가지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와보니 이제 알겠는 것은 세상에 의미둘 것이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주변의 깎듯한 대우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게 내 진짜 가치에 대한 대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도 살아남기 위해 치사하고 하기싫은 행동들 억지로 하는 것일 뿐이다.


가족을 아끼고 편안하게 사는 것.

함께 사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것,

무슨 일이 있었는 지 궁금해 하고 함께 해주는 것.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이 좌절되었는데.... 왜 이 단순한 사람들이 그간의 내 고생은 보지도 않고, 고시 붙은 거만 가지고 저러고 찧고 까부르는 걸까.


내 기운없는 말로 가사조사는 끝났다. 남편은 본인이 아침에 오느라 은행입금내역을 못 떼어왔다며 조사관을 붙들고 또 쓸데없는 얘기를 하길래, (정말 웃기는 말이다 조사가 10시인데 은행을 들러 오려고 했니 그럼? 당연히 미리 떼어놨어야지) 먼저 가겠다고 하고 그냥 나와버렸다. 조사관은 각각의 집으로 양육환경조사를 하러 와야하고, 그 출장비 2만원-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 을 1층 은행에서 입금하고 가라며 종이 한장을 주었다.


민사예납금. 이라고 한다.


이건 계좌나 다른 은행에서 입금이 되지 않는다. 반드시 가정법원 1층의 신한은행에 현금으로 입금을 하고 입금증을 가지고 민원창구로 가서 확인증을 받아야 한다.


친절한 직원의 도움을 받아 돈을 찾고, 보내고, 민원창구로 가서 확인증을 받아 나왔다.


오늘은, 휴가는 냈지만 저녁에 회식이 있다. 얼른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밝은 웃음을 장착하고 회식에 가야지.


아이고 참, 되다.


--------


연말 연시를 겪으며 기운이 많이 빠졌었어요.


그래도 힘을 내어봅니다. 시간은 흐르고, 또 새로운 일들이 생기니까요.


직업이 생겨서 참 좋은 것은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일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또 스스슥 지나간다는 것이에요.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털어놓을 수 있게 해주셔서 더 감사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혼일기(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