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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Jun 01. 2024

이혼일기 (67)

육아휴직

토요일 저녁 8시면 교회 앞 공원에 가서 아이를 받는다. 이전까지 나는 별 감정이 없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웃지는 않아도 마주치고 아이에게 아빠 사랑해 인사하자! 아빠 안녕! 이런 모습까지는 보였었는데,

가사조사서에 두 할머니들이 쥐잡아먹은 입술로 미스코리아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본 이후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이에게만 활짝 웃으며 가서 아이를 안고 돌아선 후 아빠 안녕해야지이ㅡ 정답게 아이에게만 말하고 인사가 끝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와버렸다. 그게, 지금의 나에겐 최선이었다. 달려들어 머리를 다 뜯어버릴 순 없지 않은가. 그 화마저도 참을 수는. 없었다.

 매주 수요일에는 아이를 보겠다고 ( 미리 말을 해줘야 나도 아이도 준비가 가능하고, 사전처분서에도 그렇게 써 있으므로) 문자로 연락이 오는데, 중간에 몸살이 심해 못 오겠다며 줄줄줄 엄살을 부리며 못 온적도 한두번 있다. 그 때마다 나한테 이런 말 하지 말라며 일축을 해버리면서도

그래, 그 나이먹어 그 인성과 그 무능력으로 직장생활을 하려니 너도 말이 아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뭔가  다르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다가갔는데, 뭔가.. 기운이 있는 모양새였다. 매일 출근하는 사람의 얼굴과 에너지가 아닌 느낌이라서,

쟤가 요즘 출근을 안하는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편의 집에서 직장은 꽤 먼거리여서 운전을 1시간 넘게 꼬박해서 가야하고 길도 많이 막힌다. 가서 무슨 일을 하는 지 직장분위기가 어떤지도 뻔히 알고 있는데.. 그런 피곤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저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을 하다가, 아이를 재우자 마자 직장 홈페이지를 검색해 들어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육아휴직을 했다. 올해 1월 1일 부터.

하하하하하하하

지금은 이미 4월이 다 지나간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허덕이며 사는 동안 그는 편안히 놀며 육아휴직수당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이 아프다고 엄살도 부리고 힘들다고 찡찡거리고.. 그랬던 거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정말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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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임신을 한 후 그는 공무원 시험을 병행하겠다고 했다. 당시 부부상담을 받던 상담사는 나에게 그것을 높이 평가해야한다고 했었다.

선생님, 저 사람 말만 저러지 제대로 하지 않을 거에요. 마음은 그거 붙어서 육아휴직해서 로스쿨 간다는 생각이에요. 절대로 본인의 눈을 낮춰서 가족을 부양한다는 생각이 아나라구요 

- 아내가 남편을 믿지 않으면 남편이 어떻게 제몫을 하겠어요?

.... 선생님, 지난 주에 저랑 저 사람이랑 같은 공무원 시험을 봤어요. 전 임신 중이어서 그냥 몸만 가서 본 거구요. 저 사람은 그래도 두달을 수업을 들었어요. 둘다 떨어졌지만 전 60점 받았는데요, 저 사람 두달을 수업듣고 37점 받았어요. 공부 안해요. 못 붙는 다구요.

이 때 선생님의 당황한 얼굴을 잊지 못한다. 정말 낭패인 얼굴.

사람들은 남편이 하도 없는 것도 있다며 잘난척을 해놓아서 그런지, 그런다고 그걸 그대로 믿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가 공무원 시험만 보면 붙을 줄 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눈을 낮춰 시험을 보는 것도 능력이고, 진심을 다해 공부는 것도 능력인데.

그가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한 것은 결코 눈을 낮춘 것이 아니었고, 안그래도 모자란 머리인데 전혀 진심을 다해 공부를 하지도 시험을 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세상의 모든 시험이란,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야 간신히 문을 열어준다 아무리 쉬운 시험도 얕잡아 본다면 결코 쉽지 않다.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는 그런 것을 아예 하지 않고 늘 찍은 게 맞기를 바라며 나오는 어이없는 모습을 늘 보아왔다.

고시를 볼 때면 공부조차 하지 않고 본인이 고시를 본답시며 어깨에 힘을 주고 들어가 다 찍고 나오고,

공무원 시험을 볼 때면, 내가 지금 이런 거 따위 할 사람이 아닌데 하는 자만심을 걸고 들어가 또 찍고 나온다.

그러니 정말 될 리가 없는데, 이런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나를 세상은 또 비난해서 답답하고 슬펐던 날을 기억한다.

그런 정신머리로 들어가서 시의원들 주스놔주고 시중드는 의전이나 하고 있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었겠지. 언젠가 육아휴직을 할 것 같아서 이미 전에 못 박은 적이 있었다. 내가 너랑 이혼해서 행여나 너 어디 들어가더라도 육아휴직 꿈도 못 꾸게 하겠다고.

 사전처분에 내가 임시양육권자라고 버젓이 나왔는데. 진짜 육아휴직을 했구나.

이걸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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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또 시간이 지나서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사실 확인하고 며칠은 화가 나서 잠도 못자고 끙끙거렸어요. 사실 냉정히 보면 그가 육아휴직을 했다는 사실로 힘들었다기 보다는,

사태를 좀 객관적으로 보고 가장 크게 손해보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흙탕물같은 화가 가라앉도록 기다리는 것이 참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상담에서 남편이 시험을 못 붙을 것이라고 한 것은, 남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의 길이 이 쪽이 아니라는 이야기였어요. 공부할 사람이 되지 못하니 뭘 하더라도 다른 걸 해야한다는 것인데. 이런 판단도 아내로서 꽤나 에너지를 들여 관찰하고 지켜보고 또 고민해사 나오는 말인데 그저 남편을 믿지 못하는 아내로 치부된다는 사실이,

 그리고 성인이 뭘 하는 데 옆에서 누가 믿어줘야 한다고 하는 그 진부한 논리가

땅이 꺼지는 것처럼 절망적이고  서글펐습니다.

 오늘도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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